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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 디자인 요소를 적용하는 건 꿈도 못 꾼다. 간판 개선사업을 할 때마다 반복되는 말은 "디자인 요소를 적용해 미관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디자인은 미용실에 가위 그림을 넣거나, 고깃집에 돼지 캐릭터를 넣는 수준이다. 최근 서울에서 본 가장 잔혹한 간판은 필동면옥이었다. 굳이 면식가가 아니어도 이름만 대면 알법한 전통의 냉면집. 인근지역 간판개선사업을 하며 새로 설치한 간판. 아무리 봐도 블로거들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 난, 지난주에 개업한 냉면집 간판 같다.
브루클린 정도는 아니어도 이제 성수동이 흥미로운 동네가 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서울숲역 뒤편은 마치 일본의 한적한 마을처럼 좁은 도로에 자그마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각자 개성 넘치는 개인 가게로. 길거리 전체가 일종의 아카이브인 셈이다. 가게와 간판은 마치 아카이브를 채우고 있는 작품 같다는 느낌이 든다. 괜히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하고 싶은 길. 이는 디자인이 가져온 변화고, 독창적인 개인 숍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그야말로 성수동에 '힙'이 터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간판에서도.
오래된 양옥집 입구에 올려진 커피잔, 그리고 그 속에서 마치 사우나를 하는듯한 안락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응시하는 묘한 눈빛. 특이한 간판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커피잔 속 에테르는 아티스트의 작업실이자, 갤러리이자, 커피집이었다. 양옥을 개조한 특유의 구조 때문에 '숍' 대신 '집' 자를 붙여야 맛이 살 것 같았다. 진짜 커피집. 주인과 손님 누구에게나 안락한 집 같은 공간이니 커피잔 속에 사람이 안락하게 누워있는 모형의 간판은 커피숍을 상징하는 기막힌 사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6월 1호를 시작으로 창간 6주년 기념호인 73호까지 매달 홍대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흥망과 자본의 탐욕, 눈물의 작별을 고한 홍대의 명소까지. 스트리트 H에 실린 지난 6년간의 지도를 비교해 보면 홍대 상권의 흥망이 한눈에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간판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건물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한 점과 radio eyes에서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1층엔 안경점, 2층엔 밥집, 3층엔 카페 이런 식으로 쪼개져서 각기 다른 간판을 치덕치덕 달았다면 정말 슬펐을 거다. 다행히 건물을 통째로 사용해 일관성 있는 익스테리어를 유지한 것이 꽤 반가웠다. 두성종이가 그간 쌓아온 공간 성격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한 느낌. 종이에서 안경으로 주제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간판은 전 주인에게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두성종이 시절보다 훨씬 깔끔해졌다.
'나물 먹는 곰' 이 밥집을 꽤 좋아했다. 정갈하면서 대접받는 듯한 한 끼를 먹는 것 같아서. 그래서 홍대에서 누군가와 저녁 약속이 있으면 이곳에 갔다. 나물 먹는 곰은 친구보다 아직 서먹한 사이가 한 끼를 어색하지 않게 먹기에 딱 좋은 집이었다. 그래서 주로 소개팅을 하면 이 집에 갔다. 메뉴는 즐겨 먹는 뚝배기 불고기. 그랬던 나물 먹는 곰이 사라졌다. 물론 망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곰이 밥을 팔던 그 자리엔 새가 날아들어 수제 케이크를 판다. 회색 콘크리트 벽에 널찍하게 배치한 간판에 필기체로 쓰인 '허밍벨라'.
"아이디어는 합정역 근처 버스정류장에 그려진 괄호라인에서 착안했다"며 "한줄서기를 유도하기 위해 막힌 형태 괄호라인 【 】을 이렇게 】▶▶▶▶【 방향만 바꿔 열었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시트를 잘라서 버스정류장에 붙이고 시간이 흐르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보행자가 지나다닐 공간을 비우고 괄호라인까지만, 줄을 서기 시작한 것. 간결한 메시지를 담은 사인이었지만 말없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약속이 됐다.
놀랍지만 입간판은 그동안 전부 불법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합법이다. 물론 일부만 합법이다. 지난해 12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입간판 합법화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입간판은 불법이지만 만연한 옥외광고 업계의 지하경제였다. 입간판 합법화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는 측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행정기관과 업계의 시각차는 명확하다. 행정기관은 단속의 법적 근거, 즉 규제관점이고 업계는 관련 산업의 진흥을 바라고 있다.
호주의 은행 ANZ가 동성애를 응원하는 방식은 ATM을 GAYTM으로 바꾸는 것. 수수료 일부를 동성애 관련 비영리 단체에 기부해왔던 ANZ가 이번에는 큰 판을 벌였다. GAYTM 캠페인. 시드니 시내 곳곳에 위치한 ATM을 GAYTM으로 바꿨다. 그리고 이 캠페인은 2014년 칸 국제광고제 옥외광고 부문 그랑프리 수상작.
합정동에 있던 카페 zari. zari의 마지막 블로그 포스팅은 2011년 9월이 끝이다. 구체적인 폐업 일자를 알 수 없지만 그즈음 문을 닫은 것으로 짐작만 할 뿐. 홍대입구역보다 합정역에서 가까웠고, 주차장 길에서도 두어 블록 안쪽에 위치한 곳이라 조용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 좋았던 곳. 카페 이름처럼 그야말로 꽤 괜찮은 자리였다. 모 패션지 에디터는 PS를 통해 글이 안 써질 때 가끔 들러서 원고 작성을 한다고 회고했을 만큼 번잡하지 않고 차분한 카페였다. 하지만 zari가 있던 자리에선 이제 더는 한적하게 여유를 즐기거나 원고 작성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