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irobi

나를 삼성의 나라에서 왔다고 소개할 때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처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부정을 하자니, 국내에서도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을 쓸 정도이니 '삼성의 나라'라는 말도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또 한국에 대한 질문에는 북한과 교회가 자주 등장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이게 설명하기에 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을 하지 않으려니 그 기업의 '유명세'에 의존해서 내가 나고 자란 나라가 설명되는 것 같아서 찜찜하고 불편했다. 이 회사에서 노동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있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부패 및 경제문제들이 이 회사와 같은 재벌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도 어려웠다.
건물을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도 건물을 지었고 건설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자재의 사용을 줄이기도 했다. 물론 케냐에도 안전한 건물관리를 위한 규제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은 제도적인 안전장치들을 위반하면서 뇌물을 통해 단속을 피하는 방법으로 지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불법건물에 입주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다수의 저소득층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지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폭우로 무너진 케냐 나이로비의 6층 건물 잔해에서 생후 약 6개월 된 여자 아기가 건물 붕괴 80시간 뒤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케냐 적십자는 3일(현지시간) "희소식이 있다"며 "오늘 새벽 4시께 여자 아기가 건물 더미에서
약간은 인종주의적인 경향으로 "모두 똑같이 생긴 중국인들" 때문에 아기의 아빠를 찾지 못했다고 이 사건을 비하하고 비웃기도 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너희들은 왜 다들 똑같이 생겼니?"나 "야 칭총, 왜 너희의 이름은 접시가 깨지는 소리처럼 들리니?" 등의 불편한 질문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사실상 중국인이었고 중국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을 나에게 묻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인은 아니지만 똑같이 생겼다는 점에서 중국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케냐에 다녀와서 내가 행복했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피부가 하얀 이가 피부가 검은 이들이 사는 가난한 곳에 잠시 머물다가 가지고 오는 흔한 감상 따위로 취급할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의 그 긍정적인 '감상'을 현실을 왜곡하는 순진함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만난 아이들의 환경은 정말 빈곤하고 빈곤하고 또 빈곤하다. 빈곤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케냐에서 사람들은 내가 한국 사람들이 한국어만 쓴다고, 또 학교에서도 한국어만 쓴다고 설명하면 깜짝 놀랐다. 케냐의 아이들은 집에서는 부모가 속한 공동체에서 쓰는 언어를 배우고, 또 동아프리카 지역의 공용어(Lingua Franca)이자 케냐의 국어인 키스와힐리를 배우고, 영국 식민지 시대의 영향이 남아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영어로 수업을 받는다. 덕분에 어디를 가도 3-4개의 언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상적이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나 역시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인사나 감사 정도는 키쿠유어나 마사이어 등의 언어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나이로비의 보랏빛 자카란다 꽃잎들이 떨어지는 때는 소우기라고 불리는 1-2개월 정도의 짧은 우기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때에는 작은 마을은 물론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서도 전기는 종종 나간다. 하물며 전기를 몰래 끌어다가 쓰는 지도에도 없는, 소위 슬럼(빈민가)으로 불리는 마을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전기가 나간 마을은 고요해서 아기들의 울음소리만 들린다.
헤어져야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가던 길이어서 그랬는지 약간은 정신줄을 놓고 있었고, 창문이 살짝 열려 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마타투는 정차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창문을 거칠게 열더니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아이폰을 낚아챘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흔한 수법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는데, 그런데 또 모든 것이 마치 느린 화면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아이폰을 낚아챈 친구가 너무 급했던 나머지 그걸 내 옆 창밖에 떨어뜨린 것이 보였다.
너무나 가난하면서도, 그 와중에 나와 많은 것을 나누려고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가 케냐에서 보낸 시간은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나누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습관적인 사고방식을 재고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진 자만이 나누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기 바쁘고,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눌 수 없다는 말은 사실 이미 이기심을 내재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무엇인가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쉽고 또 가까이 있는 일이다.
벽돌로 지은 집이 거의 없는 마다레의 남쪽을 사람들은 종종 슬럼(slum)이라고 부르면서 불평하는데, 주마에게 마다레는 그저 집이 있고, 또 태어나서 떠난 적이 없는 정든 땅이기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마다레가 아닌 곳에서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마다레의 골목 사이사이에는 쓰레기와 폐수가 뒤섞여서 흐르는 크고 작은 시커먼 물줄기들이 가로지르는데 주마와 친구들은 맨발로도 물을 피해 뛰어다니면서 노는 데 도가 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