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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케이블에서 심야에 영화를 보면 짜증만 난다. 19금이라 붙이고 심야에 방영을 하면서도, 흉기와 담배에 블러를 하고, 욕을 묵음처리 한다. 등급제는 대체 왜 하는 것인가. 어차피 다 자를 것인데. 시간이 흘러도 한국은 여전히 위선적인 선비들의 사회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샤워 장면을 보고 흥분한 후, 청소년들이 불건전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검열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측은하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위선적인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흔히 사랑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하여 사랑에 빠져든다고도 하고, 죽음의 순간을 대리 경험하기 위해 섹스에 탐닉한다고도 한다. 뭐든 좋다. 자신에게 절실하기만 하다면, 어떻게든 무엇에든 넘어가도 괜찮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하고 나서 엄청나게, 죽고 싶을 만큼 후회할지라도 가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사랑도, 섹스도 피하는 것보다는 해보는 것이 낫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면 망설이게 되니까. 그다음 어귀가 보이니까 굳이 가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니까.
신체적인 자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짜 쾌락은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상상하고 스스로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은 느리지만 서서히 밀려드는 거대한 해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야설 이상으로 『크래시』, 『데미지』 같은 소설에서 묘한 흥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가. 무생물에게 욕망을 느끼고, 죽음의 과정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신체적인 자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짜 쾌락은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상상하고 스스로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은 느리지만 서서히 밀려드는 거대한 해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야설 이상으로 『크래시』, 『데미지』 같은 소설에서 묘한 흥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가. 무생물에게 욕망을 느끼고, 죽음의 과정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미네 후지코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아마도 만화 캐릭터 중에서는 처음으로 반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조연이기는 하지만 존재감은 루팡 3세 이상이었다. 자신의 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 점을 이용하여 루팡 3세와 모든 사람들을 홀리고 속이는 팜므 파탈. 안타깝게도 당시에 봤던 국내판 『루팡 3세』에서는 검열 때문에 미네 후지코의 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녀의 나신에는 언제나 거친 펜 선으로 비키니나 가운이 입혀져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을 떠올렸다. 마광수와 장정일 등등. 외설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들은 기존의 문단에서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진보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라고 해도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할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기는커녕 작품의 수준이 안 되니까, 지지하면 한통속으로 묶이니까 등의 생각으로 외면했다. 작품의 질을 따져서, 상층이면 보호받아야 하고 쓰레기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엘리트주의고 파시즘이다.
'플레이보이'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70년대는 그야말로 흥청망청의 시대였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60년대 젊은이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시대를 뒤흔들었던 에너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들었다. 그중 하나는 섹스였다. 당시의 풍경을 그린 미국 드라마로는 앰버 허드가 나온 《더 플레이보이 클럽》이 2011년에 방영되었지만, 저속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시즌 1도 채우지 못하고 7개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렸다. 50년이 흘러도 세상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서울역과 영등포역 근처에는 아예 숙식이 가능한 만화방도 생겨났다. 샤워실과 개인 락커가 있고, 수면실도 따로 있었다. 그런 만화방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 본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가 술집에서 일하다가 싸움이 났고, 상대가 부상당해 입원한 것을 알고는 도망쳐 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연락이 되어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그 녀석이 숨어 있던 곳이 서울역 앞 만화방이었다. 말로는 아주 좋다고 했다. 잠도 자고, 샤워도 하고, 마음대로 만화도 보고 TV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젊을 때의 우리들은 마담과 레지가 있는 다방이 필요 없었다. 당시의 카페는 칸막이로 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칸막이 안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할 수도 있었고, 연인과 키스를 하거나 조금 더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니 다방을 갈 이유는 더욱 더 없었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는 공간은 90년대가 되어 보디가드 등의 카페 체인점이 생겨나면서 익숙해졌다. 통유리로 안과 밖이 훤히 보이고, 테이블마다 전화가 놓여 있어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고, 다른 테이블로 전화를 걸 수도 있는 공간.
그 후로 포르노잡지를 가끔 샀다.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허슬러>도 사고, 북구의 포르노 사진집도 사 봤다. 고등학교 때에는 비디오도 샀다. 도시 전설처럼 떠도는, '세운상가에서 포르노 비디오를 샀는데 집에 가 보니 동물의 왕국이었다, 전원일기였다'는 말도 경험했다. 그런 영상은커녕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가서 따지고 바꿔서 받아왔다. 겁은 많았지만 오기 같은 건 있었다. 막상 그들이 완력으로 끌고 가거나 했다면 겁이 나서 도망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면서 욕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꿔주기는 했다. 세운상가라는 공간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