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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는 팁이 있다.
사실 나는 처음에 눈물을 흘리고 싶어서 왔다고 고백했었다. 삶이 너무나 빡빡하고 숨이 막혀와서 맘껏 울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기한건 그렇게 울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이 그 24시간동안 너무나도 편안했다 라는 것이다. 핸드폰 하나 없어도 심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참 자유를 얻은 느낌이었다.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 중간에 의도치 않은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건 휴식이 아닌 다른 것을 준비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의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창피하고 괴로운 기억들도 있었지만 늘 결론은 긍정적으로 내리자고 다짐하였다. 밤이 완연한데 별과 달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야 했다. 정말 충격적이게도 나에게는 오직 한 장면만이 스쳤다. 나는 자식도 평균보다는 많다. 그 아이들이 이미 성년이 된 이때를 맞이하느라 수없이 많은 행사와 기념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많았던 순간들이 단지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온 걸까?
비단 바깥의 공기, 햇살과 자유를 일컫는 게 아니다. 신체를 옭아매고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사회는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나만 집중하는 작은 공간에 갇혀서야 나의 존재와 감각을 오롯이 느끼게 됐다. 오전 10시, 종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나는 세상 속으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어제와 달리 인생의 수인囚人이 아닌 주인主人이 당당하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줄어든 틀을 가만히 보다가, '네가 내 감옥이었니' 하는 생각에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내가 원했을 나에게로 가는 길을 선택할 때 나는 그것을 타인의 시선으로 한정 지었다. 그들이 바라는 나는 사실 스스로에게 원하는 모습을 투영한 것이었다. 본래의 모습을 줄이기도 늘이기도 하면서 틀에 꼭 맞게끔. 그래서 스스로 하여금 그것이 나의 본 모습이라고 믿게끔.
문득 어쩌면 최대한 단촐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1.5평 작은 공간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사는데 그렇게 넓은 공간, 많은 것들이 필요했던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들을 채우고 사는지 화들짝 놀랐다. 치장하고 소유하느라 하나 둘 쌓인 수많은 물건들을 떠올리자니 불안하고 공허한 내 마음의 흔적들을 보는 것 같았고, 버리지 못한 많은 책들도 결국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안간힘처럼 보여서 갑자기 스스로 참 안됐다는 감정이 밀려왔다.
한 다섯 줄 정도 써내려가다 '요즘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툭 던졌다. 특별한 일 없이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는 요즘이었기에 당연히 술술 써내려갈 수 있을 것 만 같았는데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당혹스러웠다.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나서야 편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왜 선뜻 답을 이어가지 못했을까'라는 말로 시작하여 두서없이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호흡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니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들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개선과 변화의 결심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심이 반복되면 언젠가는 성취하는 경험이 있었기에 다짐만으로도 성과가 있다고 느꼈다. 사실 현실적으로 시간을 내자면 못 낼 사람이 뭐 그리 많겠는가만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쫓기듯 등 떠밀리며 살고 있다. 성찰의 공간과 시간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지혜로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좌복 위나 조용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단지 5~10분만이라도 내 마음 속으로 고요히 들어갈 수 있다면 당신의 성찰과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