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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 재판을 받는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김종필씨가 92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 일부 언론 보도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조명하면서 긍정적인 데 방점을 찍는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엄정하지 못하면 어두운 역사는 되풀이된다. 고인이 되면 악행은
폴 엘뤼아르는 ‘자유’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 자유여”라고. 그에게 가슴 벅차게 다가온 자유
그룹 시크릿 전효성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글을 게재했다. 전효성은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추모사진을
'산업화'의 성과가 상위소득 1%에 집중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고착화시켰으며, '민주화'의 성과는 민주화를 주도했던 차상위 소득 10%에 집중되어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양극화를 고착시켰음을 보여준다.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이 된 한국 민주주의의 실상은 한마디로, 상위소득 1% 산업화세력과 차상위 소득 10%의 상층노동이 좌우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층노동을 지배·약탈하면서 인간적 상처를 남기는 "과두제민주주의"로의 전락이다. "하층노동의 민주주의"가 없다는 것은 그동안 진보정당과 진보정치가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그 결실이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상위소득 10%에 속한 계층들에게 돌아가게 하거나 주로 민주화를 주도했던 세력들을 과대대표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발하는' 미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너무 부럽다. 현직 외교관 중 약 1,000여명이 반대의견을 밝혔다. 뉴욕 시카고 등 400여개 도시는 행정명령 집행을 중단하며 '피난처'를 자처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며, 동시에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만일 한국에서 박근혜와 이명박의 '매우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현직 공무원이 반대입장을 밝히고, 기업들이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지방정부가 중앙정부 정책에 반대되는 피난처를 제공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도대체 미국은 왜 한국과 다를까? 공무원, 지방정부, 기업들이 일치단결해서 트럼프의 '똘아이짓'에 반발할 수 있는 미국적 저력은 어디에 연유하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 핵심이 '폭력을 국민에게 돌려준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타도하자는 움직임의 시작은 대구였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2.28 대구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4.19 혁명은 대구의 민주화운동이 도화선이 됐다. 2.28 대구민주화운동으로 달아오른 분위기에 3.15 부정선거가 기폭제가 됐다. 이런 움직임은 1956년 3대 대선에서도 맥을 찾아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이승만은 70%, 조봉암은 30%를 얻어 이승만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대구의 득표율은 정반대였다. 조봉암이 72.3%, 이승만은 27.7%를 득표했다.
1998년 현대자동차 파업 당시 대치 중인 노동자들과 전투경찰 병력 2000년, 노점 상인들의 집회를 봉쇄하고 있는 전경들 '전투경찰'이 45년 만에 그 이름마저도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988년은 응답했다. 다만 거기서 우리가 보지 못한 것 중 하나는 격렬한 민주화투쟁의 모습들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전국민족민주연합 결성대회부터 6공 정치수배 해제 촉구대회까지를 기록한 사진집 '싸움'이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