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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공신력 있는 자료도 없고, 자신들이 직접 근거로 내세운 엠마 왓슨의 연설에 "Gender Equalism"이 전혀 언급되지조차 않는다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이러한 주장 혹은 망상이 반년 가까이 제멋대로 자라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우리는 "성 평등주의"가 여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제시되어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황을 ①한편으로 껄끄러운 여성주의(자)를 덜 합리적인 이들로 낙인찍어 몰아내면서도 ②동시에 이제 현실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과거의 남성우월주의로 퇴행하는 걸 피하면서 ③합리성·정상성과 남성의 권리를 함께 점유하고픈 한국 남성들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2월 23일로 예정되어있던 혜성여고의 '메갈리아의 딸들 : 10대 여성과 페미니즘' 강연의 취소는 빛의 속도로 이루어졌다. 지난 20일경 인터넷에는 혜성여고에서 하는 한 강연의 주제가 '메갈리아의 딸들 : 10대
남자들에게 여장을 시키고 외모 품평을 하는 것, 그것을 전우용은 "미러링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여장남자 외모품평회'라는 "미러링"은 무엇을 비춰보이고 있는 것인가? 여성적으로 꾸미는 것에 관심이 있건 없건, '여자니까 여자답게 꾸며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외모 품평에 나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전우용은 이미 '억울한 남자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미러링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거울에 비춰 보이는 모습이 왜 자신에게 분노를 일으키는지 되짚어볼만한 냉철함이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 타자화되어 고통받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공감, 혹은 공감하려는 노력이 없는 자들이 '진보'의 이름을 참칭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 박근혜를 욕한다고 진보가 아니다. 미국을 욕하고 친일파를 비난하는 게 진보가 아니다. 아마도 자기들이 '진보'라고 하면서 이 세계의 대표적인 타자화된 존재들인 여성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혐오(재타자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자들이 아마도 대부분 바로 '진보'를 참칭하는 민족주의자, 국가주의자들(잠재적 파시스트들)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전우용 선생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분리한 뒤 시사인의 해당 기사를 후자에 분류한다. 그런데 특히 논쟁적이었던 "정의의 파수꾼들" 기사를 보면, 데이터 분석 자체가 해당 영역에서 아카데미즘적 훈련을 받고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축적하고 있는 김학준 선생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이쯤에서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전우용 선생과 김학준 선생 중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론 분석에서 누가 더 아카데미즘에 속하고, 누가 더 전문가인가?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전우용 선생이 한국사학계에서 어떤 스칼라십을 쌓았든 간에, 그가 아카데미즘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면 동의하겠지만, 이 주제에선 그냥 아마추어A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시사인의 해당 기사야말로 좀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여성혐오에 맞서기 위해 남성들의 여성비하 언어를 그대로 흉내내 되돌려준다는 메갈리아의 전략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운동방식이 문제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메갈리아 역시 이제껏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상당부분 포기하고 감내해온 여성혐오적인 정동에 저항하면서, '어차피' 정서에 균열을 낸 중요한 운동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운동방식의 한계를 비판하기에 급급한 세력들은 오히려 여성혐오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어차피' 존재하는 사회현상으로 간주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메갈리아4'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 본문을 2015년 6월 17일 생성시점부터 전부 훑어 읽었다. 내 일차적인 결론은 이렇다: 최근의 혐오표현을 문제삼으며 메갈+워마드를 문제삼는 사람, 그중에서 특히 "메갈"의 대표집단으로 메갈리아4 페이지를 짚으며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존중해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발언을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이들로,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공론장에 진입할 자격이 없다. 실제로 메갈리아4 페이지에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대학교 학부 교양수업이나 초보적인 여성주의 개설서 수준에서 다룰 만한 주제들로, 반 사회적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성평등을 여성주의 없이 해나갈 수 있다거나, 진보정치에 여성주의가 부차적이라는 식의 20년 전에나 통했을 시대착오를 왜 2016년에 반복해야 하는가? 이제부터 유효한 질문은 어떤 여성주의인가이지 여성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다. 정의당이 현재의 '다수 당원'들을 따라 '7% 정당'으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면, 정의당의 당면과제는 남초정당이라는 현재의 냉소적인 평가를 불식시키고 어떻게 20-30대 여성이라는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잠재적 지지자들을 선점하고 당으로 끌어들일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지배언어체계를 전복하는 것은 피지배자의 해방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 수행이 가지는 다층적이고 맥락적인 측면에 대한 매우 섬세한 고려가 따라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남성들의 언어가 가해자의 언어이고, 여성들의 언어가 피해자의 언어라면 여성들의 언어는 길게 볼 때 해방적이되 가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복적이되 본질적으로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피지배자의 언어가 지배자의 언어체계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해방의 언어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제일의 조건이라고 나는 믿는다.
인턴넷 게시판 '워마드'에 한 여성이 '친구인 남자가 나 때문에 죽었다'고 올린 글이 사실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6일 경기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여성주의 성향의 사이트 워마드에는 살인 사건을 자백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