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chung

“아무리 많이 배운 여자도 ‘맘’이 되면 다 벌레가 된다.” “어디서 저런 여자들이 기어나온 것이냐.” “여자들이 겁도 없이 남의 차 타니 문제가 생긴다.”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의 한 남성 부장이 후배 여성 기자들에게
제가 바라본 노키즈존 논란의 양상은 찬성과 반대 두 입장이 서로를 끊임없이 설득하기 위해서 모든 합리적인 근거를 총동원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맘충의 사례들이 총망라되었고, 노키즈존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선진국의 사례도 망라되었습니다. 노키즈존은 유색인종 출입금지, 장애인 출입금지, 유대인 출입금지와 마찬가지로 엄연한 차별이고 인권유린이라는 주장도 있고, 사업주의 영업권과 자유로운 상행위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아기 똥 싼 기저귀를 간다더라, 물컵에 소변을 받는다더라 하는 말들이 괴담처럼 돈다. '맘충'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음식점에서 이유식을 데워 달랬다더라, 어린이 메뉴 시켜놓고 공짜밥을 요구한다더라 등 맘충의 악행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 육아의 아수라장에 남성은 없다. 현실에선 아기띠 매고 유모차 미는 아빠들 모습은 어딜 가나 흔하다. 음식점, 마트, 유원지, 촛불집회에서도 자주 목격한다. 드물게 아이를 등원시키는 육아휴직 중인 아빠도 있다. 그렇지만 '파파충'은 없다. 남녀가 같이 낳고 같이 키워도, 아니면 엄마 혼자 '독박육아'에 외로이 시들어가도,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존재로 낙인찍히는 대상은 여성이다.
영국을 여행하며 알아챈 신기한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아이들에 대해 굉장히 무관심하다는 점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외출한 가족들이 많았는데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거나 힐끗 쳐다보며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다시 자기 하던 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거나 아기가 울어도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소음이었으니 안 들려서는 아닐 테고, 내가 느끼기에는 "어쩔 수 없지"에 가까운 태도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시끄럽지만 참아야지 뭐. 부모를 째려보거나 뭐라 하는 식의 책망이나 비난은 없었다.
육아 전에는 내 커리어가 단절되어 우울해지거나 몇 년째 멍하니 정체된 채 늙어가다 보면 절망할까봐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일상이 무너지는 것. 시간 속에 그냥 잠식되는 느낌. 아주 작은 것들을 매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의 반복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이맘때쯤 주로 만나게 되는 단비가 바로 어린이집, 그리고 같은 처지의 애엄마 친구들이 된다. 그러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방치하고 까페에서 남편 돈이나 쓰며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요즘 맘충'의 이미지가 탄생하기 전, 안팎으로 여기저기 망가지기까지의 엄마들의 생활은 드러날 일이 없다. 자기가 좋다고 낳아 놓고 왜 힘들다 징징대느냐, 평일 낮에 커피도 마시고 팔자 좋네, 라는 핀잔만이 남는다.
공덕동에 사는 여성 기자 A 씨는 아침엔 지하철을 타느라 '출근충'이 되고, 일과 시간에는 기사를 쓰느라 '설명충'이 되고, 저녁이 되면 어린이집에 맡겨둔 아이를 조금 늦게 데려오는 바람에 '맘충'이 된다. TV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