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yeongjun

필리버스터 한 번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가 달성될 리도 없고,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도 없다. 당신도 그걸 알고 필리버스터를 지지했으리라 믿는다. 모르고 지지했다 해도 이제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두드러지는 것은 냉소와 혐오다. 냉소와 혐오는 편리하다. 그리고 편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쉽게 유려해질 수 있다.
어떤 아이유 팬들은 '여초사이트에서 좌표를 찍어가며 아이유를 공격하고 있고, 진정한 아이유 팬들만이 아이유를 보호하고 있다'라는 주장을 한다. 역시 손쉬운 집단화고, 우스운 일이다. 전자는 명확한 근거가 없고, 후자의 경우 이 논쟁에서 아이유에게 호의적인 입장을 표한 허지웅이나 진중권이 딱히 아이유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아이유에 대한 공격은 아이유가 소녀를 벗어났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우스운 이야기다.
갑자기 그가 물었다. 너는 왜 이걸 하고 있냐. 술집을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대학 나와서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왜? 항상 하던 이야기를 했다. 딱히 취직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딱히 취직할 직장도 없었고, 공부를 더 하자니 상황이 좀 나빴고, 대학원 졸업할 때 학자금 대출도 몇 천 있는 지경이라 빚 몇 천 더 내봐야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이왕 망할 거라면 젊어서 망해보려고. 그냥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나는 네 과거를 모른다. 너는 왜 배를 탔냐. 배 타기 전에는 뭐 하고 살았냐?
나는 맥락도 없이 '열심히 해라. 그러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다.'라고 먼저 질러대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그 말은 대체로 틀린 말이고, 몇 가지 중요한 정치적인 지점을 은폐하며, 개인적으로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몇 년간 뭘 잘 해보려고 하는데 뭔가가 잘 안 풀리는 상황에서 업계의 전설이 된 노인에게 '잘 해보고 싶은데, 상황이 어렵습니다. 어쩌면 좋죠? 뭐부터 할까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가 '열심히 해. 모든 디테일을 챙겨. 스스로를 단련하고 계속 고민해'라고 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호기심과 충동이란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편의점에서 파는 막걸리를 증류하면 소주가 될까? 마트에서 파는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될까?'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될 수도 있다. 한국 전통주 연구소 병설 서로서로 공방에서 7년 동안 개량한복을 입고 술을 빚어온 최우택 씨(32세, 연구원)는 어느 날 갑자기 '맥주를 증류하면 무슨 맛이 날까? 막걸리를 증류하면 무슨 맛이 날까?' 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마침 그에게는 연구실이라는 공간도 있었고 증류기도 있었기에 일을 저질러보게 되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담배 반 갑과 오백 원이 전부였다.' 라는 문장은 부코스키나 까뮈의 소설을 여는 첫 문장으로는 적절할지 몰라도 하루를 여는 문장으로서는 명백하게 부적절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가 그러하다. 예술은 예술일 때나 아름답지 현실은 언제나 냉정하다. 예술적으로 완벽한 안나 카레니나가 당신이 아는 여자라면 그냥 연을 끊는 게 답인 것처럼 말이다. 별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술을 조금 많이 마셨고, 길바닥에 누워 자다가 가방을 잃어버린 것뿐이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자수성가 신화를 만들어 팔아먹는가. 솔직히 이제 자수성가 신화를 까는 글을 쓰는 것마저도 유행이 너무 지나서 구린 시대가 되었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힘들게 살았네 어쩌네 하는 구질구질한 자기 서사들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처참하게 구리며, 모욕적이다. 차라리 명랑하고 쾌활하게 살고 웃으며 모욕적인 농담을 던져라.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MSG를 덜 써서 만드는 양심적인 음식을 만들면 되지 않나? 라고 묻는 너에게 나는 마트에서 장을 제대로 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똑같은 식재료라 할지라도 퀄리티에 따라 가격은 천지차이가 난다. 하지만 조미료는 그 간극을 상당히 줄여준다.
카메라의 시선과 한국인 가족의 시선에는 우월한 제 1 세계의 시선이 빙의되어 있다.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뭐야 저거. 문명화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서울의 시민이 야만의 부족에게 '문명의 음식'을 대접하고, 그들이 어리둥절히는 것을 즐긴다. 21세기에. 2014년 소치올림픽이 끝난 마당에. 저건 대체 어느 시대의 역겨운 서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