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yeong

느닷없이 박 대통령이 12월 일본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하여 듣는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과연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가 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찾아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도덕적 우위'는 일본의 전쟁책임을 덮어주기는커녕 일본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적 일탈행위는 앞으로 더욱 발붙이기 어려워질 것이다. 히로시마 방문이 끝나면 아베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하여 진솔한 사죄를 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질 것이고, 그 후에는 아시아에 대해서도 똑같이 진실한 태도를 보일지가 초점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2005년 8월 26일 한일회담 문서공개 관련 민관공동위원회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로서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했다. 반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무상 3억 달러에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미해결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일본으로부터 청구권자금을 받은 한국 정부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감각으로는 퇴행적 역사인식을 보이는 아베에게 미국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미국은 역사인식과 그 밖의 외교안보 문제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본다. 물론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미국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A급 전범 7명을 교수형에 처하는 것으로 일본의 전쟁 책임을 단죄했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이 그것이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아베에 대해 미국이 '실망했다'는 입장을 냈던 것은 이러한 기준 때문이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 문제라는 차원에서 엄격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균형외교가 지속적인 안정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강대국들의 권력정치 속에서 균형점 자체가 유동적이며, 국력에 따른 위계질서 속에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의 입지가 매몰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자기보전을 추구하는 양자관계 중심의 외교를 넘어서 동북아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게 잡는 외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위안부문제를 일단 정상회담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 한일 기본조약의 부속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를 설치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은 중재위원회 그 자체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양국간의 새로운 분쟁을 초래한다. 또 일단 중재위원회 설치가 제안되면 위안부문제 이외의 문제도 거의 확실하게 논의 대상으로 책상 위에 오르게 된다.
전후 70년이 되도록 동북아에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일본의 패전 처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은데 있다. 일본은 패전국이면서도 영토를 상실하거나 막대한 배상금을 짊어지지 않았다. 최고지도자였던 천황의 책임도 불문에 부쳤다. 매우 관대한 패전 처리였다. 패전국 일본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는데 두 가지 전제가 있었다. 도쿄재판과 평화헌법이다. 도쿄재판으로 상징되는 불철저한 패전처리에 대해 관계국들은 불만을 가졌지만, 군사력의 보유를 포기하는 평화헌법이 있어 균형을 잡아 주었기에 납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며 평화헌법을 사실상 형해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분위기나 일본 정부의 입장으로 볼 때 한국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합의안이 나오기 어려운 만큼, 위안부 문제를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결코 한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라는 단일 사안이 대일외교 전체를 옭아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를 '분리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재위원회 회부는 이러한 분리대응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1960년 10월 12일 대낮에 일본의 제1야당 당수가 연설도중에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17세의 소년 야마구치 오토야(山口二矢)였다. 필자가 이 사건을 떠올린 것은 지난 12월 '신은미 토크 콘서트'에서 18세의 고교 3학년 학생이 사제 폭발물을 투척했다는 뉴스 때문이다. 물론 야마구치 사건처럼 본격적인 테러는 아니지만 많은 유사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부당한 압력이나 폭력으로 이를 위압하려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연말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정부에서 일할 때 피해자 한 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도 내가 죽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 알아. 이 문제는 내가 죽은 후에 여러분들 세대에서 제대로 해결해 줘. 그래도 옛날과 비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게 되었고 우리 편이 되어 주어서 여한은 없어.' 이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현가능한 '최선'(차선이 아님)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실현가능한 차선조차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에서 실현가능한 최선을 논하는 것은 공허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아마도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적대감을 넘어서는 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