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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란 치료 효과 없이 환자의 생명만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부르겠어요."
김 할머니는 평소 건강했다. 2008년 2월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축제에 다녀온 뒤 감기 증상이 있었다. 동네 병원에서 약을 사 먹었다. 약사는 “혹시 폐렴일지 모르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
23일부터 '존엄사' 선택이 가능해진다. 심폐소생술 등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해 '연명 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환자 뜻에 따라
기대와 희망이 절망과 체념으로 바뀌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없다며 입원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다른 종합병원을 권유했다. 나는 다시 구급차를 탔다. 처음 수술했던 그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왜 다시 돌아왔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자 처연했다. 싸우기도 하고, 웃고 떠들며 했던 세월이 얼마였는데, 왜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됐는지. 3개월이 지나자 퇴원을 종용했다. 병원 생활을 전전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너무나 지쳐버렸다. 조그만 일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엄마를 향해 "이제 그만 놓고 가야 할 거 같다"고 귀에 대고 말하기까지 했다. "내가 꼭 살려줄게" 하고 말하던 나는 여기에 없었다.
이 글은 한국의 안락사 법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쓰는 글이다. 이 시간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나와 엄마를 위해 이 글을 썼다. 엄마가 쓰러진 것은 1월14일이었다
벨기에에서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 또는 '행복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하는 안락사(安樂死)·존엄사(尊嚴死)(이하 존엄사)가 최근 몇 년 간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윤리 관련 인터넷 매체인 '바이오에지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나는 죽은 뒤일 것이다. 나는 내 삶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내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을 자유롭고 책임있게 내릴 수 있는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행사하기로 했다. 당신은 아마 이유를 물을 것이다. 이런 유례없는 결정을 내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나는 불치병에 걸린 게 아니다. 나는 심각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지 않다. 우울증도 없다. 그저 내가 죽을 때가 된 것뿐이다. 지금은 죽기 적당한 때이다.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다. 지금은 자유롭게 나의 죽음을, 니체의 말처럼 내가 원하기 때문에 내게 온 죽음을 포용하기 적당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