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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영재교육의 특성은 초고속 선행학습입니다. "3년치 분량을 1년에 가르치고 배웠다는 것"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 듯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곤 했지요. 머리 속에 지식이라는 물건들을 잔뜩 쌓아 놓으면 그게 지식인을 만들고 천재를 만드는 줄로만 알았겠지요. 심신이 지치도록 점수 따기와 실수 안하기 훈련을 반복하면 천재들의 타고난 창의력, 관찰력, 사고력은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능률을 위해서 훈련된 기억장치뿐입니다.
외국인을 만나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화장실은 저 쪽에 있습니다. 이 셔츠는 값이 얼마입니까?" 등등의 대화를 영어로 나눌 수 있다면 물론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외국인들과 그런 대화나 하자고 우리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뿌리고 개인별로 1만 5천 시간 이상을 영어 공부에 퍼부은 것이라면, 그건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교육계 지도자들의 무책임, 무감각, 무대책, 그리고 대다수 사교육 업자들의 상혼이 함께 뭉쳐서 일으킨 총체적 재앙입니다.
비정상적인 교육 체계가 비정상적인 점수 경쟁을 낳았고 사교육 업체들에게 황금어장을 열어주었으며, 점수 올리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막장 사교육은 드디어 시험문제를 미리 빼돌리는 제임스 본드형 족집게 과외를 창조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실력의 경쟁이 아니라 부모가 가진 재력의 경쟁입니다. 이 험난한 환경에서 가난한 서민들 속에 숨어있는 천재들을 어떻게 발굴해낼 것인가. 아직 해답은 없습니다.
E.B. White (1899-1985)는 미국의 독보적인 교양 주간지 The New Yorker에서 50년간 대표적인 필자로 활약했으며 미국인들에게는 전설적인 수필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The Elements of Style"은 미국의 고등학생에서부터 대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영작문의 바이블"로 일컫는 책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표현법 요강"이라고 부르면 알맞을 듯한데,이 책을 집필한 두 공저자 중의 한 사람이 바로 White였습니다.
영작문의 언어적 기법은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부분과 스스로 단련시켜야 하는 부분(배울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하는 심각한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단련시킨 영어의 고유감각이 없는 사람은 선생님에게서 아무리 많이 배워도 그것이 자신의 실력으로 쌓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어 단어를 하루에 200 개씩 암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영어 단어를 번쩍이게 해서 잘 외워지게 한다는 기계가 나오는가 하면, '연상법'이라고 하는 괴이한 사술이 등장하여 영어의 고유 감각과는 무관한 암기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단어의 용법과 언어적 고유감각에 대한 훈련은 간데없고 단어의 뜻을 무작정 많이 외우는 것 자체가 단어 학습의 최종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식 영어교육이 이와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사용 가능한 영어를 위한 학습의 최소 단위는 완전한 문장이다."라는 원칙으로 속히 돌아와야 합니다.
떨쳐낼 수 없었던 의구심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영어가 그 다음에 혼자서 해야 하는 감각 훈련 단계에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어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독해 방법을 가르칠 때 어린 아이들의 두뇌에 어떤 영향을 끼쳤기에, 영어가 늘 국가적인 고민거리로 남아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영어 학습에 투입한 시간은 세계 1위. 영어 구사력은 아시아 12 개국 중에서 12위. 국내의 모든 시험문제는 우리의 결함투성이 영어교육 수준에 알맞게 정확히 조율되어 있음. SAT 등 타국의 시험에서는 대규모 부정행위. 외국에 유학 나가면 이 모든 것이 백일하에 탄로. 피해자들이 침묵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타인들에게 계몽 불가. 세대가 바뀌어도 악순환의 연속.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만들어온 거품입니다.
물론 보조 수단인 단어와 문법도 잘 알아야 하지만, 이것도 완전한 예문을 통해서 감각적으로 터득하지 않았다면 그런 지식은 실용 가치가 없습니다. 영어 단어의 뜻을 매일 200개씩 암기하면 그게 다 영어 실력으로 쌓이는 것으로 국민 전체가 잘못 세뇌된 나머지, 그림으로 외우고, 연상법으로 외우고, 손가락이 아프도록 연필로 써가며 외우고, 사전을 한 장씩 찢어 삼키면서 외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편지 한 줄 자신 있게 쓸 수 없고 온전한 문장으로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 상인들이 이리도 긴 세월 교육계를 점령해 있는 동안, 국내 영어교육계 학자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5년 전, Samuel Kim 박사의 콜럼비아 대학 박사학위 논문이 큰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습니다. Samuel Kim 박사는 20년 동안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했던 한인 학생들 중에서 1,400명을 무작위로 뽑아 조사했는데, 그 중 졸업을 한 사람은 56%에 불과했고, 나머지 44%는 중도에 탈락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의 대상은 전체 한인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이 통계는 유학생 및 한국계 교민 자녀들 전체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물론 모든 피해 당사자들과 그 부모들이 중도탈락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여러 학부모님들에게는 이런 발표 내용이 믿을 수 없는 일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