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galryang

필리버스터 한 번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가 달성될 리도 없고,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도 없다. 당신도 그걸 알고 필리버스터를 지지했으리라 믿는다. 모르고 지지했다 해도 이제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두드러지는 것은 냉소와 혐오다. 냉소와 혐오는 편리하다. 그리고 편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쉽게 유려해질 수 있다.
천하삼분지계가 오늘날 우리 정치권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독자세력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의 구조 속에 안철수의 천하삼분지계는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가능'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가 아니라 4년 전에는 가능했었다는 말이다.
노건호씨가 현대 중국 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 역사도 좀 더 천착했더라면 조금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고전 소설 [삼국지연의]의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전근대(前近代) 동아시아 한자문명권(漢字文明圈)에서 불청객(?)이 조문을 하였을 때 상주나 제주 측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전범을 보여준 것은 필자 생각으로는 나관중의 위 소설에서 동오(東吳)의 중신 주유(공근)가 죽자 제갈량(공명)이 문상 갔을 때 벌어진 일화가 아닐까 싶어서 그 내용을 소개해 본다.
약속 잡지 않고 남의 집에까지 찾아가는 것이 이른바 진정성으로 포장되는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진정성도 뭣도 아니고 그냥 무례한 것 아닐까? 아니 전화, 이메일, 메신저, 중간에 쌍방을 아는 지인들을 다 놔두고서 대뜸 상대방의 사생활의 공간인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인데, 더 고약한 것은 그렇게 찾아온 사람을 안 만나 주는 사람은 문전박대를 하는 그냥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니 이를 시도한 사람은 손해 볼 것이 없는 꽃놀이패라 할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클리셰 중의 하나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임. 전제왕조 시절에 망한 나라의 백성 진수가 교묘히 기록해 둔 촉한의 사적에 힘입어 천년 후에! 촉한정통론이 대세가 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기록하는 이가, 잊지 않는 이가 승자가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