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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사례가 없다는 비판은 어떨까. 주류 경제학도 이제 심각한 불평등이 성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며 국제기구들은 포용적 성장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은 총리가 임금 인상을 독려하고 임금과 소비 증가를 통한 경제의 선순환을 강조한다. 또한 힐러리 클린턴의 공약이 보여주듯 여러 선진국들은 불평등의 개선과 총수요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은 멈추시라. 대신 진지한 연구와 제대로 된 논쟁을 보고 싶다.
흥미롭게도 이제 보수적인 논자들이나 언론도 보편적인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원래 세금을 많이 내던 부자들만 세금을 더 내는 것은 불공평하고 세수도 얼마 안 되니 더 많은 사람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장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47%에 이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진심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감세를 지지하고 증세에 반대해온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2020년에 1만원이 되려면 현재 6470원인 최저임금을 매년 약 16%씩 인상해야 하니,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 영세한 자영업자들이나 중소기업들에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인상되어 임금과 비교할 때 선진국들 중 거의 중간 수준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최저임금 미만율도 높아져 2016년 현재 노동자의 13.6%, 264만명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정부는 카드수수료 인하 등의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가맹점업계의 불공정 관행과 임대료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처들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은 약자들끼리의 갈등만 심화시킬 수 있다.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한 번씩은 던져보았을 법한 질문이다. 최근 이 질문이 미국 등 선진국의 정책결정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어 실업률이 떨어졌지만 임금상승이 무척 느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5월 실업률은 4.3%로 거의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당 명목임금 상승률은 1년 전에 비해 2.5%였고, 물가상승을 고려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4월 0.1%를 기록했다. 2015년 이후 명목임금 상승률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매우 느리다. 이러한 '임금 없는 성장'은 이제 경제의 새로운 수수께끼가 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빵을 나누는 문제는 역시 전세계의 고민거리다. 개인소득의 불평등도 심각한 문제지만 최근에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배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기 시작하여 2000년대 들어 급속히 낮아졌고, 다른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다. 노동생산성 상승에 비해 실질임금 상승이 낮아서 국민소득에서 노동자들의 몫이 줄어들었고 기업에 비해 가계가 상대적으로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계에 수수께끼와도 같은 일이라 이제 학자들은 머리를 짜내어 여러 설명을 내놓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2단계 아베노믹스와 일본 정부의 임금인상 노력이다. 아베 정부는 임금 상승을 아베노믹스 선순환의 핵심고리로 생각하여 관제 춘투(정부 주도의 봄철 임금인상)를 통해 기업들에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해왔다. 또한 아베 정부는 작년 발표한 '1억 총활약 플랜' 아래서 저출산 해결을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장시간 노동 규제, 최저임금 인상 등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도 안정적인 소득과 노동시장의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이들을 포함한 모든 야권 후보들이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등 비슷한 재벌개혁 방안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재벌개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벌을 개혁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삼성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그렇다면 당시 재벌개혁이 왜 실패했는지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재벌개혁은 정책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며,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포럼의 '세계위험보고서'는 앞으로 세계경제 5대 위험으로 소득과 부의 격차 확대, 기후변화, 사회의 분열, 사이버공간 의존, 인구고령화 등을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불평등이다. 세계의 상위 1% 부자가 전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45%에서 2016년 약 51%로 절반을 넘었다. 이 보고서의 서문은 성장의 이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은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쓰고 있다. 진보나 좌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의 엘리트라는 이들의 고민이다.
2016년은 세계화의 종말이 시작되는 해로 기록될 것인가. 그 답은 훗날에야 알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세계화는 이제 정치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우파의 반세계화 또한 그들을 지지한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역시 필요한 것은 그 이득이 공평히 나누어지며 적절히 관리되는, 세계화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일 것이다.
신고립주의는 그것을 선택하는 선진국의 노동자들과 소득분배의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불안은 모든 불황이 그렇듯이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더욱 큰 타격을 줄 것이며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미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선진국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정치적으로 지속불가능한 부자들만을 위한 세계화가 아니라 그 이득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포용적인 세계화의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