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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에 대하여 비판하는 여러분에게 크게 공감하며 지지합니다. 그런데 그 대안이 수능 전형(정시)을 늘리자? 그러면 누가 유리해지나요? 강남과 특목고·자사고가 유리해집니다. 내신 절대평가를 하자? 그러면 누가 유리해지나요? 강남과 특목고·자사고가 유리해집니다. 고교학점제를 하지 말자? 그러면 누가 유리해지나요? 특목고·자사고가 유리해집니다. 고교학점제가 일반고에 불리하다는 오해야말로 가장 황당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해인 2022년에야 외고·국제고·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어 첫 고1이 입학 가능하고, 그제서야 내신 절대평가제가 실시 가능하고, 그제서야 고교학점제가 실시 가능하다. 그런데 고1은 공통과목을 이수하므로 실질적으로는 이들이 고2가 되는 2023년(차기 대통령 2년차)에야 고교학점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듯 2022년에야 ①고교체계 정비 가능→ ②그제서야 내신 절대평가 도입 가능→ ③그제서야 고교학점제 도입 가능 이라는 논리적 흐름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같은 논리적 흐름에는 두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불공정함은 심각한 수준이다. 누구누구가 경시대회를 전략적으로 노리고 학원을 다니더니 상을 휩쓸어가더라, 학교에서 '될 놈들'에게 학생부를 잘 써주더라, 친구가 3백만원짜리 컨설팅을 받아 논문을 쓰더니 상을 받거나(논문경시대회) 교과 세특(세부능력 특기사항)에 기재되더라,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주는 데 얼마라더라 등등.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체험하고 목격하는 일이기 때문에 체감되는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을 흑색선전 정도로 폄하하거나 매도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형 관리'라는 큰 그림 없이 '수능 개편'을 성급히 내놓았다. 내용을 보면 1안으로 가면 현행 대비 나아지는 게 없고, 2안 자체로는 변별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누구나 1안을 찬성할 수밖에 없도록 이상한 양자택일을 만들어 놓았다. 모두 '전형 관리'라는 큰 그림 없이 '수능 개편'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2안 공히 고교학점제와 어긋나게 설계하여 '국영수는 고3까지 해야 한다'는 통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래저래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참여정부의 어두운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15개월론'에 대한 맘까페 등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대입경쟁·취업경쟁이 25% 증가한다는 것이다. 2배 증가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또하나의 문제는 '늦된 아이'의 문제이다. 지금도 연말에 태어나는 아이는 상대적으로 발달이 늦어서 부모들이 입학을 1년 유예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입학자의 연령폭이 12개월에서 15개월로 커지면, 자연히 '늦된 아이'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출생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이 아닙니다. 두 번에 걸쳐 볼록 올라온 봉우리 구간이 있어요. 첫 번째 봉우리는 이른바 '에코세대'인데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여서 인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에코세대 직후에 두 번째 봉우리가 있습니다. 저는 이 영역을 '낙타혹 세대'라고 부르는데요, 대략 1990~2000년생 사이로서 대략 50대 세대의 자녀들입니다. 현재 고등학생에서 20대 정도의 나이지요.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친 일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력 과잉인 것입니다. 낙타혹 세대가 직장을 구하고 나아가 집을 구하고 결혼하고 출산율을 끌어올리도록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단기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 직무유기 국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헬조선 관련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 1위가 '정부 불신'(46%)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 메르스, 가습기살균제, 현대자동차 안전 문제 등이 일맥상통합니다. 공익을 위한 정부의 규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더욱 약화되고 심지어 타락했습니다. 공적 규율을 회복하고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재장착하려면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박정희 정부를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이때 '선진화'의 의미를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안전, 공정함, 삶의 질과 같은 새로운 가치로 재정의하는 일종의 사상운동이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정치적 반동은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국정교과서라는 시대착오적 시도로 인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돌아가는 게 진보라는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정치 의제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로 돌아가는 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민주/반민주 대립 구도가 재연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경제나 사회 의제에서 현상유지나 복고는 곧 퇴보입니다. 결국 국정교과서 논란은 새삼 범진보세력 전체의 위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냅니다. 지향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존 것을 지키자' 내지 '과거로 돌아가자'고 하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닙니다.
문재인 대표가 북한에 대한 5.24 제재 조치를 당장 해제하자고 주장한 것이 8월 16일, 문재인 대표가 한명숙 의원을 위한 모금운동과 재심청구를 거론한 것이 8월 26일, 윤후덕 의원이 당 윤리심판원에서 시효가 지나 징계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은 게 8월 31일 이었습니다. 그러자 안철수 의원은 9월 2일 "혁신은 실패했다"며 세 가지 정풍운동을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 의원에게 '왜 뒤늦게 혁신에 딴지를 거느냐'고 묻는데, 안철수 의원의 이공계적 시각으로 봤을 때 혁신이 실패했다는 판단은 8월 16일, 26일, 31일에야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비노 의원들의 행태와 겹쳐서 잘 분간되지 않았을 뿐, 안철수 의원은 단순한 '문재인 흔들기'와는 다른 지점을 가리킵니다.
OECD 2위인 한국의 노동시간을 OECD 평균치로 낮추면 신규 일자리가 170만개 창출됩니다. 주당 12시간 이상의 초과노동만 막아도 신규 일자리가 69만개 창출됩니다. 저는 손학규 전 대표가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저녁 있는 삶'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2012년 당 경선에서 제기된 가장 공감가는 의제였습니다. 당시 '저녁 있는 삶'은 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맥락에서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을 뿐, '저녁 있는 삶'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증대와도 직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