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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가장 많이 응답한 표현은 "김치녀/년"이었으며 페미니스트나 메갈리안 등 성차별이나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 외모나 나이, 능력 등에 대한 비난이 많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못생긴', '뚱뚱한',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혐오표현과 '외모에만 신경 쓰는 생각 없는 존재'로 폄하하는 혐오표현을 동시적으로 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의 경우에는 존재성을 부정하고 섹슈얼리티만 부각된 "변태", "호모" 등으로 지칭하는 혐오표현이 두드러졌다. 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의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질병'이나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혐오표현도 많이 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인이 찍힌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이 겪는 만성적 스트레스를 뜻하는 '소수자 스트레스'는 사회적 지지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음으로 인해서도 발생하지만, 편견과 차별이 주된 요인이라는 사실이 여러 경험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차별금지법조차 없는 한국의 경우라면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성소수자 중 28.4%가 자살을, 35%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는 구체적인 보고도 있었다(친구사이·2014). 특정한 속성을 가진 소수자들이 다수자들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그 공동체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1) "Roh는 17세였고 그의 지능지수(IQ)는 69였다. 그는 6세 때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결과 뇌에 결함이 생겨 고통받았다." 2) "잠재적인 범죄자나 다름없는 외국인에 대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도 부족할 판에 다문화 입학전형? 더 이상의 외국인 우대정책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이 둘 모두 대학교수가 한 발언이라면, 과연 어느 쪽의 해악이 더 클까?
'미국은 혐오표현을 관용한다'는 것은 엄밀하게 보면 틀린 말이다.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처벌법을 두고 있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도 혐오표현 문제를 비국가적 기제로 규제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혐오표현이 실질적 차별이나 폭력을 야기할 때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강한 강제력을 동원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일관성'이다.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표현의 자유를 일관성 없이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혐의가 있다. 자기 편이 하는 말에는 무제한적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상대편이 하는 말에는 그 위험을 과장해 처벌을 주장하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당하게 종북 시비를 거는 자를 처벌하자고 하면, 똑같은 논리에서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만큼' 위험하니 처벌해야 한다는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논란은 '서로 건드리지 말자'가 아니라, '이것도 규제하고 저것도 규제하자'는 식으로 발전하기 십상이다.
혐오표현은 자정에 맡길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소수자의 사회적 힘이 충분하다면 혐오표현은 얼빠진 사람이나 하는 실없는 소리로 전락한다. 이 정도라면 국가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소수자가 '자연스럽게' 강력한 힘을 갖게 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현실적으로도 소수자에게 '맞받아치면 되는 거 아니냐' '무시하면 된다'는 조언은 한가한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가 인권보호를 위한 공적 개입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인권은 그렇게 '자정'에 맡긴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혐오표현은 소수자 '차별'에 대한 문제다. 그런데 한국에는 차별금지법조차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보적인 수준의 차별금지법과 차별 시정 기구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그나마 있는 법과 제도조차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현재 수준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다양한 조치가 가능함에도 인권위는 요지부동이다. 유감스럽게도 국회가 이 문제를 집요하게 따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국가들에는 차별금지법도 있기 마련이다. 차별 문제를 다루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마련해놓고, 더 나아가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도'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