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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의 자부심이 사라졌다"
국감장에서 황당한 질의로 'MS 국회의원'이 화제가 되었을 때, 음악계에서도 덩달아 한 언론보도가 뒤늦게 각광받았다. SNS로 활발히 공유되었던 문제의 기사는 그동안 지자체의 문예회관이 콘서트용 피아노를 입찰해온 관행을 문제 삼고 있었다. "단지 연주자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저렴한 국내산 대신 2억원이 넘는 스타인웨이 사를 명시해 피아노를 구매"했는데, 이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시정조치에 따라 입찰 규격서에 특정 제품을 명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보도였다.
후마니타스칼리지가 객원교수들에게 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노동위원회의 중재에도 학교는 행정소송 검토에 들어갔다. 2010년 문을 연 후마니타스칼리지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교육 전문 단과대학이다. 문학·사학·철학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융성위원회가 주최하는 '문화가 있는 날'입니다. 전국 각지의 공연장에서 무료로 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지요.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는 공연장 관계자를 대상으로 사전수요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의 선택지는 독주와 앙상블로 세분화 되었는데, 과일가게(기악)에서 유독 망고(타악)를 독립(혹은 강조)시켜 묻고는 다음과 같은 설문 결과를 얻었습니다. 기악독주(10%), 기악앙상블(29%), 성악독창(11%), 성악합창(19%), 타악독주(6%), 타악앙상블(25%).
누군가는 브람스 음악을 심형래 버전의 '루돌프 사슴코'에 빗대며 농을 건네기도 했다. '달릴까? 말까?' 애간장을 태워도 너무 태운다는 것이다. 나는 극작가 브레이트를 떠올렸다. 몰입을 방해하는 연극의 '소외효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런 소심함의 백미는 그의 교향곡 1번 4악장에 등장한다. Allegro non troppo ma con brio(알레그로, 과하게는 하지마. 그래도 생기는 있어야!)
날이 정말 무더웠다. 선풍기 바람으로 성이 안 차 피아노 옆에 옷을 훌렁 벗어 놓았다. 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의 가느다란 길이 이제야 고스란히 느껴졌다. 실오라기를 걸쳤을 때는 차마 알지 못했던 낱낱의 감각이 기억의 해동과 함께 깨어나던 놀라운 순간이었다. 팬티 고무줄이란 결국 관념의 굴레와도 같은지 몰랐다. 몸 대 몸으로 정직하게 악기와 대면할 수 있다면, 더불어 내 위선의 더께도 벗어 던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학시절, 짝사랑해 마지않던 물리학과 친구가 느닷없이 '근의 공식'을 아느냐 물어왔다. 제대로 외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자 "너도 마찬가지"라며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파리에서 또래의 수학자를 만나 금새 친해졌다. 그런데 웬걸! 그녀 역시 근의 공식을 암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의 공식이 필요할 때마다, 그녀는 매번 2차방정식을 놓고 해를 도출해 버린단다. "나는 암기를 잘 못해. 대신 원리를 이해하면 그 노력을 덜 수 있지"라고 겸손히 말하던 그녀는 어느새 카이스트의 수학과를 이끌고 있다. 음계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두 살 터울 형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중 큰 부상을 입고 오른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절망에 빠져 신음하는 연주자를 위해 동료 작곡가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라벨 외에도 브리튼과 슈트라우스, 힌데미트 같은 당대 작곡가들이 비트겐슈타인의 왼손을 위해 여러 작품을 헌정했다. 불구가 된 피아니스트는 좌절을 딛고 그 중 라벨의 곡을 가장 즐겨 연주했다.
딱 나의 경우,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피라미드의 중간층'을 형성하는 보통의 음악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년에 한번씩 독주회를 거르지 않는 것이 음악가로 살아갈 자격의 마지노선이라 여기고 있다. 이렇다 할 매니저가 없으니 스스로 모든 것을 관장해야 한다. 연습시간을 쪼개가며 우편으로 배송할 음악회 전단에 일일이 우표를 붙일 때는 팔이 두 개쯤 더 있으면 좋겠다고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진행의 모든 경비를 금싸라기 같이 모아둔 적금을 들이 부으며 쾌척해야 한다.
"지상의 도시가 악행으로 멸망할 때, 수몰된 이스가 물 위로 떠오른다.", 전설은 의미심장한 경고를 남기며 끝이 납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호되게 앓고 있는 세월호의 참사와 소름 끼치도록 유사한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방이라는 위험한 기술에 의존해, 열쇠 하나로 허술히 통제하다, 인간의 오판으로 수몰 되었으니까요. 곧 바다 위로 인양될 세월호는 물 위로 떠오른 이스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사회의 오래된 악행을 준엄히 경고하고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