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seongsu

선거 때 유연하고 점진적인 소수자 정책을 제시하는 건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기대까지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최소한 소수자가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점을 의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선거'는 변명이 될 수 없다. 특히 사회 유력 인사나 정치인에게는 강한 윤리적 책임이 요청된다. 진심으로 후보를 사랑하고 지지한다면, 청자에게 "그렇게 듣지 말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화자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게 맞지 않을까?
여성혐오범죄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에서 혐오와 차별에 노출된 모든 소수자의 문제다. 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다른 소수자로 쉽게 옮아간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 그 위기 탈출을 위해, 소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혐오'가 작동하는 전형적 메커니즘이다. 이때 선택되는 소수자는 여성일 수도 있고 성소수자, 이주자, 장애인일 수도 있다.
강남역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무차별 살인을 당한 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대한 우려와 논의가 며칠째 이어지는 가운데, 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낙인이 찍힌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이 겪는 만성적 스트레스를 뜻하는 '소수자 스트레스'는 사회적 지지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음으로 인해서도 발생하지만, 편견과 차별이 주된 요인이라는 사실이 여러 경험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차별금지법조차 없는 한국의 경우라면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성소수자 중 28.4%가 자살을, 35%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는 구체적인 보고도 있었다(친구사이·2014). 특정한 속성을 가진 소수자들이 다수자들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그 공동체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1) "Roh는 17세였고 그의 지능지수(IQ)는 69였다. 그는 6세 때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결과 뇌에 결함이 생겨 고통받았다." 2) "잠재적인 범죄자나 다름없는 외국인에 대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도 부족할 판에 다문화 입학전형? 더 이상의 외국인 우대정책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이 둘 모두 대학교수가 한 발언이라면, 과연 어느 쪽의 해악이 더 클까?
'미국은 혐오표현을 관용한다'는 것은 엄밀하게 보면 틀린 말이다.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처벌법을 두고 있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도 혐오표현 문제를 비국가적 기제로 규제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혐오표현이 실질적 차별이나 폭력을 야기할 때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강한 강제력을 동원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식민지배를 찬양하거나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표현을 처벌할 필요가 있을까? 일제 청산과 민주주의가 우리 헌법의 핵심적인 가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이 폭력이나 소수자 차별을 야기할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고, 쿠데타를 부추기거나 군부독재로의 회귀를 획책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보수 진영에서는 민주화운동 부정을 처벌한다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의 성취를 부정하는 것도 처벌하자고 나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가장 큰 문제는 '비일관성'이다.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표현의 자유를 일관성 없이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혐의가 있다. 자기 편이 하는 말에는 무제한적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상대편이 하는 말에는 그 위험을 과장해 처벌을 주장하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당하게 종북 시비를 거는 자를 처벌하자고 하면, 똑같은 논리에서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만큼' 위험하니 처벌해야 한다는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논란은 '서로 건드리지 말자'가 아니라, '이것도 규제하고 저것도 규제하자'는 식으로 발전하기 십상이다.
혐오표현은 자정에 맡길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소수자의 사회적 힘이 충분하다면 혐오표현은 얼빠진 사람이나 하는 실없는 소리로 전락한다. 이 정도라면 국가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소수자가 '자연스럽게' 강력한 힘을 갖게 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현실적으로도 소수자에게 '맞받아치면 되는 거 아니냐' '무시하면 된다'는 조언은 한가한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가 인권보호를 위한 공적 개입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인권은 그렇게 '자정'에 맡긴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