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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내 편이 아니다. 당신의 상급자 편이다. 그리고 당신의 상급자는 당신 때문에 눈곱만큼이라도 심기가 불편해지거나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당신을 제거하려고 온갖 음모를 꾸밀 수 있다. 그럴 때 아마 당신은 조용히 제거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보다 먼저 적의 등에 비수를 꽂고 제 발로 걸어나오고 싶을 거다.
이제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는 본인이 목숨처럼 아끼는 쇼트트랙을 계속하려는 의도로 국적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스티브 유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빅토르와 스티브를 다르게 바라보는 한국인의 감정과 태도에 대하여 여전히 심정적으로 불편한 것이 남아 있다.
만수가 더 큰 건을 터뜨려서 교장실에 끌려왔다. 이번에는 더 호되게 야단을 쳐서 확실히 잡아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에는 파출소에서 그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두 달 후에는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된 만수를 결국 자퇴시켰다. 2007년 여름까지 이렇게 자퇴시킨 학생이 무려 5명이 되었다.
다짜고짜 질문 먼저 던졌다. 내 첫번째 질문은 "마감의 심리적 압박이 있는가." 대답은 "없다." 두번째 질문이 "내가 뭘 어떻게 쓰건 상관없는가." 대답은 "없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걍 내 블로그네?" 대답은 "맞다."
동물을 사랑하는 내가 동물복지와 환경에 신경 쓰면서 패션 포토그래퍼로 살아간다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일들을 많이 해야 하는 내 직업은 종종 날 회의감과 무력감에 빠져들게 하니까요. 모피 사진이라도 찍는 날이면 스스로를 속이고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가식적인 내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한 적도 많았습니다.
노동이 이념의 언어라는 편견이야 말로 편견입니다. 노동은 만국공용어이자 세계시민의 언어입니다. 세계와 함께 발걸음을 맞추는 첫 번째 실천은 바로 5월 1일에 제 이름을 되찾아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는 온 세계가 노동절로 부르고 있는 5월 1일을 아직 '근로자의 날'로 고집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전환점 역시 늦게 찾아 왔습니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다 제적됐기 때문에, 25년 만에 늦깎이로 졸업할 때까지 제 최종 학력은 사실상 고졸이었습니다. 또 오랫동안 수배와 도피, 수감생활 때문에 제대로 된 월급을 아내에게 가져다 줄 수 있었던 것도 마흔이 넘어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