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oyukyeol

“GE의 전 회장 잭 웰치. 그는 어릴 적 키가 아주 작고 말까지 더듬는 보통 이하의 아이였습니다. 잭 웰치가 어릴 때의 일화입니다. 참치 샌드위치 한 개를 주문하는데 말을 더듬어 튜나(tuna)를 투 튜나(Two tuna
얼마 전 회사 후배를 만났더니 묻는다. "곧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으면 사립초등학교를 보내는 게 낫다. 현재의 공립초는 너의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회사 일과 병행하기 어려워. 학교를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립초등학교가 바쁜 직장인 엄마에게는 아직까지 최선이란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했던 고민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똑같이 하고 있는 후배가 안쓰럽다. 나라가 아이를 키워준다더니, 그런 날은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이게 다 너를 위해 그러는 거야." 어떤 때는 "오늘만 노는 거야, 갔다 오면 다시 공부해야해"라며 조건부 자유를 준다. 그렇게 오늘의 행복을, 오늘의 자유를 뒤로 미루면서 언제나 불행한 매일 매일을 반복한다.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부모가 적지 않기에, 한국 어린이의 행복지수는 OECD 꼴찌를 기록하고, 한국청소년의 자살률은 그토록 높은 것이 아닐까.
교육의 수단적 가치에만 초점을 둔 암흑기에 우리 교육 에너지원은 국가와 사회, 학교, 교사, 그리고 학부모의 교육열(敎育熱)과 학생의 학습열(學習熱)이었다. 그러나 이 에너지원의 과열, 그리고 이 에너지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 결여로 인해 교육열을 안고 살아가는 주체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통을 겪어왔다. 그동안 교육개혁을 통해 부모의 '과도한' 교육열(敎育熱)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실패했다. 교육개혁의 영원한 화두는 어찌하면 이 교육열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휘되도록 유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