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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꼬박 1년간 경찰개혁위원으로 일했다. 전체회의와 분과회의(수사분과) 그리고 소위원회가 셀 수 없이 열렸는데 적어도 80 회 이상 회의에 참여했다. 과거 정부 위원회에 몇 차례 참여해 보았지만
서울대 출신 수형자의 디테일 가득한 감옥 관찰기.
장강명은 문학상을 네 번 탔다.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눈높이를 낮추라고. 지금 같은 취업난에 작은 기업이라도, 비정규직이라도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하라고. 그러면 회사는 곧 너의 노력에 너를 인정하고, 정규직을 시켜줄 거라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사회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는 15일 ‘아시아미래포럼’ 특별강연에서 ‘지대 자본주의’가 강화되고 자본가들과 대기업에 더 많은 소득이 분배되는 과정과 벼랑 끝으로 몰리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현실을
우리는 같은 촛불을 들고 한데 모여서 같은 염원을 외치지만 현실의 고민은 계급이 나눠진듯 섞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배운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저학력의, 빈곤층 남성들의 젠더 감수성을 비판할 자격을 박탈당하는가? 어째서 '젠더'가 계급을 형성하고 여기에서 착취와 차별과 억압이 일어나고 있음은 은폐되는가? 다시 말하자면, 어째서 젠더의 계급-또는 여성성의 계급('창녀'와 '모성'의 스펙트럼 같은)은 계급의 문제로 논의되지 않는가? 블랙넛이나 정중식처럼, 소위 '루저' 감성의 혹은 실제로 남성성 경쟁에서 상대적 약자인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착취나 비하, 혐오 발언을 할 때 이것이 논란이 되면 왜 그들보다 계급이 높은 여성을 기어이 '가정'하고, 여성이 반드시 약자는 아니라는 아무말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7월 1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 30대 직장인과 대학생 중 90%는 현실을 ‘헬조선’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보는 이유 중 1위가 금수저와 흙수저의 존재다
부시무지/무이폰테인 공동묘지. 부시무지 정착지는 악취가 진동하는 개울, 거대한 공동묘지, 조금 더 부유한 교외 지역 두 곳 사이에 위치한다. 약 8,500채의 판잣집에서 3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 판잣집 위의 고압선은
“차별 논쟁은 받아 들여질 수 없으며 편견을 품고 있다. 그들의 말처럼, 편견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 나는 ‘귀부인 madame’이 아니고 내가 베이비시터를 두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언젠가는 누구든 소개할 이야기였다. 워싱턴포스트가 1월 31일 "한국 젊은이들은 자신의 국가를 '헬'이라고 부르고,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다(Young South Koreans call their country ‘hell
한국에서는 최근 세대로 올수록 학력과 계층, 직업의 대물림이 더 굳어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을 뒷받침하는 분석결과다. 3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영국에서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금융·법률회사들이 신입사원을 모집하면서 이른바 '상류층 테스트'를 통해 중산층 이하 출신의 진입을 원천봉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런 사실이 영국 정부
말하자면 저 영화(들)는 계층/ 계급의 벽에 가로막힌 세대의 판타지다. 한국의 청년 세대가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영국의 (일부) 청년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영국의 경우, 그 사회구조는 더 강고하다. 다만, 그래도 적당히 편안하게 먹고 살 수는 있다. 뭔가 대단한 것이 되겠다는 꿈만 없으면 된다. 가끔 어느 쪽이 차라리 더 나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모두가 다 뭔가 되겠다며 미친 듯이 뛰어가는 사회와(그리고 안 뛰면 죽는다), 뛰어 봐야 아무 소용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아예 안 뛰는 사회와(하지만 안 뛰어도 안 죽는다), 둘 중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