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wonseokcheon

최순실 일당이 범죄에 사용한 암묵적 수단은 검찰 수사와 국세청 세무조사였습니다. 청와대 지침에 따라 영혼 없는 수사를 하다가 "다리 부러진 사자에게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조응천 의원)가 된 검찰에 도저히 박수를 쳐줄 수가 없습니다. 반성이 빠진 검찰의 변신은 언제고 과거로 복귀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몸담은 언론도 하이에나입니다. "비판 언론엔 불이익을 주라"(김기춘 전 비서실장)는 위협이 전해진 걸까요.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땐 내부자 노릇을 하다가 힘을 잃자 무분별한 의혹까지 앞다퉈 보도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편들던 일부 종편 패널들은 미어캣처럼 두 손을 비비며 시시덕거립니다.
참모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물러날 때를 알리는 것이다. 대통령 옆에도 눈과 귀가 있다면 직언을 해야 한다. 조원동·안종범·우병우·정호성.... 해바라기도 고민을 한다. 나는 청와대 비서진, 정무직 공무원, 친박(親朴) 의원 가운데서도 고민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자녀들의 물음에 더 머뭇거려선 안 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생각하고 결단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부터 입장을 밝혀라. 검찰 수사가 옳은가, 그른가.
내년 초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 두 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는 것만큼 블랙코미디는 없다. 지금 시급한 일은 2선 후퇴든, 퇴진이든 박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제 발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현실화한다면 탄핵 외길밖에 없다. 여기엔 세 가지 전제가 붙는다. ①수사 기록에 '대통령의 범죄'임이 명시돼야 한다. ②국회에서 부결됐을 때 그 후폭풍을 제도권이 감당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③여야 합의가 가능한 헌재 소장 후보가 제시돼야 한다.
최순실 의혹에 대한 고발이 접수됐지만 검찰은 한 달간 꿈쩍하지 않았다. 미르·K스포츠재단 인허가 과정을 감사해야 할 감사원도, 최씨 일가 탈세 의혹을 조사해야 할 국세청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나라냐"는 물음은 대통령과 최씨뿐 아니라 국가기관 모두를 향하고 있다. 문제는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들이 놀랄 만큼 잘 돌아간 데 있었다.
오직 진실만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살릴 수 있다. 샤머니즘 정치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으려면 불의한 권력을 부검해야 한다.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밤늦도록 일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귀한 자식을 군대에 보내온 시민들의 일상이 민주공화국을 지켰다. 어차피 이 나라를 지켜온 건 대통령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개헌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최소한의 전제 조건들이 있다. 가장 시급한 건 최순실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들을 실제 연설하기 전 미리 전달받은 정황이 나타났다. 청와대와 무관하다는 최씨가 이 파일들을 왜 사무실 PC에 갖고 있었던 것인가. 대통령과 최씨는 대체 무슨 관계이고,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란 최씨 말은 또 무슨 뜻인지 시민들은 알고 싶어 한다. 결국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고, 특검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이 할 일은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엔 유난히 세렌디피티가 차고 넘친다. 우선은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최순실씨 딸의 경우다. 승마를 하는 최씨 딸이 체육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하려고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걸까. 특기자 종목에 승마가 처음으로 포함된다. 모집 요강도 '원서 마감일 기준 3년 이내의 수상 내용'을 평가하게 돼 있지만 원서 마감 후 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로 당당히 합격한다. 우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입학 후 수업 불참 등으로 제적 경고를 받았는데 엄마와 함께 학교에 다녀간 뒤 학칙이 개정된다.
한국에서 '진실'은 누구 힘이 센지 겨루는 파워게임의 결과다. 보라.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숨진 농민 백남기씨의 사인은 "병사(病死)"다. 민정수석 아들이 서울경찰청 운전병으로 선발된 이유는 "코너링이 좋아서"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은 비선실세가 주도한 게 아니라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것"이다. 권력의 내부자들 말고는 누가 승복할 수 있겠는가.
김영란법은 결국 전문가들이 공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의 사망진단서는 '병사(病死)'가 맞나. '외인사(外因死)'가 맞나. 사법정의를 지킨다는 판검사들이 왜 스폰서에 놀아나는가. 기자들은 그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전문가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움직이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직업적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각성이 이어질 때 김영란법은 성공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하는 건 백씨가 쓰러졌던 지난해 11월 집회 당시 경찰 지휘 책임자들(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의 면면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옛 치안비서관)을 거쳤다. 집회 당시 그 비서관 자리에 이철성 현 경찰청장이 있었다. 나는 청와대 비서관 경력자들이 경찰 수뇌부를 장악한 것이 백씨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고 믿는다. 구중궁궐에서 대통령과 수석들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사람을 청와대에서 나간 지 8~9개월 만에 경찰 총수 자리에 앉힌 건 경찰조직의 정치적 중립성을 무시한 것이다. 청와대의 한마디 한마디에 춤을 출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