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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결혼으로 세상이 당장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결혼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을 조금은 바꾸었다. 이성애자들에겐 '한국에서도 동성 결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동성애자들에겐 '우리도 결혼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동성 결혼은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 혹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의 결혼으로 대한민국이 조금 더 로맨틱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께 커밍아웃할 때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머니나 아버지 어느 한쪽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양친이 모두 한 자리에 계시고, 주변에 나를 포함한 우리 세 명만 있어야 하며, 식당 같은 곳이 아니라 반드시 집 안이어야 했다. 그리고 두 분의 건강 상태가 좋고 다른 큰 걱정거리가 없어야 했다. 즉, 부모님 주변에 신경 써야 할 요소가 없고, 오로지 이것만 깊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는 커밍아웃을 했다. 또한 지나치게 감정이 올라올 것을 대비해서 가능한 한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몇 가지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한 후 자리를 비워 부모님 두 분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열차 예약까지 마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재미있고 고마웠던 점이 바로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보여준 친구들의 반응이다. "난 또 불치병에 걸려서 시한부라고 고백하는 줄 알았다."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마워." 가슴이 따뜻해지는 대답이 많았다. 백미는 바로 "이제 드디어 커밍아웃하는 거야?" "이미 알고 있었는데?" 등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내가 게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내가 게이냐 아니냐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지만,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들이 캐묻지 않는 것이 친구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태도였다.
그날도 여럿이 모였고 게임을 할까 술을 마실까 분분한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모두의 눈이 그에게로 쏠렸다. 이십 대 초반의 핸섬한 남자, 화니였다. 아, 그의 몸에서 광채가 났다! 후광! 그랬다. 사람들이 말하는 후광이란 걸 보았다. 그의 등장은 흡사 순정만화, 아니 순정만화 같은 영화, 왜 <늑대의 유혹> 같은 그런 영화 말이다. 딱 그 영화의 '강동원' 등장 신 같았다. 슬로우로 들어오는 그와 그의 뒤에서 빛나는 후광. 그런 그에게 반하지 않는다면 게이가 아니다!
소개받은 광수 형의 친구들 가운데 꽤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광수 형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광수 형의 나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게이커뮤니티에 '데뷔'하던 2004, 5년만 하더라도 게이들끼리 오랜 시간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서로의 이름이나 나이 같은 인적 사항을 물어보는 것이 실례였다. 누군가가 아웃팅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상대방의 나이나 인적 사항을 대충 알았고, 나 역시 광수 형의 나이를 외모에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했다.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럼없이 대하게 될 때까지 엄마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셨다. 밥을 짓다가 빨래를 개다가 길을 걷다가 문득 아들이 게이라는 생각에 울컥 눈물을 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셨다고 하니 엄마의 고통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 빨갱이 아들보다 게이 아들을 더 견디기 힘들어 한 엄마였다. 그러다 차츰 머리로는 이해하게 되셨다. 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고백했다. 나는 니가 좋다고. 그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 신발 끝만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콩닥콩닥. 몇 시간이 흐른 것마냥 긴 기다림 끝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니가 좋아. 그런데 덧붙이는 한마디. 나 일주일 있으면 호주로 이민 가. 어쩌지?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일주일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