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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이 견디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그것을 혼란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렸지만, 따지고 보면 그 혼란은 인간 심성의 복잡함이자 그 인간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복잡함이며, 거기에 토대를 둔 온갖 사회적 가능성과 창조력의 복잡함이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노래에서건 영화에서건 시에서건 모든 종류의 새로운 발상법이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제가 대학생일 때 일본에서는 한류 붐으로 도시 곳곳에서 한류 스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말은 듣기조차 싫다. 그러니 가능하면 내 눈 앞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한국'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내가 한국인임을 들키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한 적도 있었습니다.
광복 71주년을 맞아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해방부터 남한정부 수립까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66장의 사진을 모았다. 35년의 일제강점기 후 고국으로 돌아온 한국인들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오후 전후(戰後) 70년 담화(아베 담화)를 발표한다. 아베 총리는 오후 5시 임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담화를 정부 공식 입장으로 결정한 뒤 오후 6시부터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세계 안보분야에서 일본의 향후 역할은 태평양 전쟁 종식 70주년을 맞는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다. 불행히도 도쿄 보수파들이 '보통국가' 라는 지위의 전제조건이라 생각하며 몰아 부친 적극적인 재래식 군대의 개발은 동아시아 내 정치적 긴장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궁극적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가져왔다.
한일협정 체결 50년인 지난 6월 22일에 한일 정상은 서울과 도쿄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교차로 참석했다. 일본 언론은 9월이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강경정책을 펼쳤다. 박대통령의 대일강경책이 지나치다고 평가했던 사람들도 이같은 대일정책의 전환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갑작스런 전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