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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사형수에게 전해지고 일주일 후 뜻밖에 답장이 도착했다. "저 같이 미천한 놈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다니요. 저는 남의 걱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편지를 받아본 그녀의 몸은 전율했다. 자신처럼 스스로가 쓸모 없게 느껴진 누군가에게 삶의 의미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녀에게 좀처럼 없었던 용기가 솟아났다. 그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김태훈, 유희열, 옹달샘.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혐오 발언을 한 당사자들을 감싸는 의견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의 방어논리를 요약하자면 해당 발언들이 '의도는 그렇지 않으나 실수로 수위를 넘어서 막말이 되어버린 과한 표현'이었기 떄문에 이 정도는 눈감아주고 넘어가주지, 뭘 그렇게 난리를 치냐는 식이다. 이렇게 언제나 항상 결국 결론은 '여성혐오 발언을 한 가해자들이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어 지나친 비난을 받는다'로 귀결되어버리는 이 이상한 현상은 결국, '혐오'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인식과 합의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오늘 5월 15일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날입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생각에 휩싸이는 것 같습니다. '군대 간 나는 그럼 양심이 없는 사람인가? 군대를 안 가면 감옥이라도 가야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 병역기피자가 늘어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나라 안보에 위협이 될테고 그러다 북한이라도 쳐들어오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하면 떠오르는 궁금증들을 모아봤습니다!
독일어로 병역거부자는 '전쟁저항자'란 단어로 불린다고 한다. 한국에서 병역거부 운동 초창기에 '양심'이란 단어를 두고 "군대 가면 비양심이냐"는 논리에 막혀 애먹은 걸 생각하면 차라리 전쟁저항자란 표현이 훨씬 본래 의미를 명료하게 담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저항자라고 쓴다면 병역거부 단어 자체에서 으레 병역의무를 수행한 남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측면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지금 한국 병역거부 수감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들과도 구별할 수 있는 단어인 것 같아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아침 9시에서 9시30분쯤 되었을 때 배 위에 이상기류가 돌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배 앞쪽으로 몰려가 구멍에 바람을 넣으려고 애썼어요. 우리는 휴대전화로 구조요청을 했어요. 구조선이 도착할 때까지 6시간이 걸렸어요. 그 6시간은 제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어요. 저는 제가 다시 숨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죠. 사람들은 신께 용서를 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제 이름은 카렐(Karel)이에요. 저와 여동생 자나(Jana)는 학교에 몇 안 남은 로마족이에요.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자나를 괴롭혔어요. 눈이 오는 날 자나의 신발을 숨겨 저는 자나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왔어야만 했죠. 자나는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우리는 주임 선생님께 이런 상황을 말했지만 선생님은 우리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어요. 선생님들은 우리가 더럽고 나쁜 냄새를 풍긴다고 모두에게 이야기했어요. 심지어 자나는 보통아이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하기도 했죠.
"스펙은 다 거짓말이에요. 스펙이 부족해서, 태도가 안 좋아서 취직이 안 된다고 어른들이 속이는데 사실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거죠. 마치 자신이 부족해서 안 되는 것 같아 쓸데없이 조심하는데 오히려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해보려고 하고 작은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젊은 세대가 자기 탓을 하지 않고 남 탓을 했으면 좋겠어요. 조상 탓, 사회 탓을 하라는 것이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경쟁할 대상이 아니라 사실은 같이 낙오된 동지들이거든요. 같이 살 길을 찾아야지, 혼자서 아등바등하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아요."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아침, 제 인생은 통째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카이로 길목에서 무르시 지지자들의 시위 현장을 촬영하고 있을 때, 경찰들이 오더니 거리를 통제하고는 거리에 있던 수천 명을 바로 체포했습니다. 무르시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했습니다. 경찰은 저를 바로 앞에 두고 어떻게 고문할지 서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경찰은 온갖 도구로 저를 구타했습니다. 제가 눈을 감으려고 하면 버클이 달린 벨트로 제 눈을 내려쳤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어두웠습니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치료가 아닌 또 다른 구타였습니다.
"오늘날 캄보디아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크메르 루즈 이후 오늘날까지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런 질문 없이 복종만 하길 바란다.정부는 우리 집 아래 있는 땅을 팔아 치웠다. 그리고 우리가 조용히 사라지길 바란다. 항의하는 것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방법이 아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인내하고, 미소 짓고, 용서한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시리아를 떠나오기 전에 엘리아스는 3개월에 한 번, 이후 6개월에 한 번 골수검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1년 4개월이 지나도록 골수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민캠프에서 골수검사는 불가능하고, 사립병원에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아픈 아들을 위해 아무런 도움도, 지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저와 아내는 단지 우리 아이들이 교육받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