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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청년 모두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일 때에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일을 시작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따라 특성화고등학생들은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보통 3학년 때에는 현장실습을 위해 학교를 떠난다. 말이 현장실습이지 실제로는 여타 노동자들처럼 일을 하는데, 이들이 일을 하는 곳은 대부분 너무 열악하고 힘들어서 모두가 기피하는 사업장이다. 사람을 구하지 못한 업체들이 특성화고등학교에 손을 내밀고 특성화고등학교는 이들 업체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매개 역할을 담당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가 위험하고 힘든 일자리의 공급처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청년의 사망은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왜 이러는 것일까?
2016년 현재, 우리 사회의 입양제도가 '여전히' '아동'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건이 다시 한 번 발생했다. 지난 7월 대구에서 예비 입양 부모에 의해 학대 당한 결과, 뇌사 상태에 빠진 3세 아동의 이야기이다. 이 아동은 이미 한 차례 다른 가정에 예비 입양 보내졌다가 '학대'받은 후 '반환된' 아동이었다. 1개월 만에 아동은 다시 대구의 예비 입양 가정에 보내졌다. 4개월 후, 아동은 저나트륨 증상으로 1차로 병원 응급실행을 했다. 아동학대를 의심한 의사가 신고했으나, 예비 입양 부모에 대한 지역 평판이 좋다는 이유로 사건은 무마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잠재적 부양가능성이 있다고 간주되는 수급(신청)자와 그렇지 않은 수급(신청)자를 구분하여 후자에 대해서만 수급자격을 인정한다. 그러나 잠재적 부양가능성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부양을 받고 있지 못함이 명백한 이상 잠재적 부양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공공부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공공부조에서 배제하는 것은 당사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끼리도 합법 파견과 불법 파견을 나누고, 파견과 용역을 나누고 파견과 위장도급을 나누면서 분열하고 있다. 본질인 파견, 그러한 파견을 허용하는 파견법을 문제삼기보다는 지엽적인 문제로 다름을 확인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다름이 강조되면 단결은 어려워진다. 쪼개져 외로이 남게 된 노동자들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된 제도에서 찾기 보다는 무능력, 게으름에서 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주노동자들은 숙식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잠자리는 임시적인 것이며, 식사는 해결해야 할 난제입니다. 한국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내국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입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이 불안정하고 부실합니다. 특히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중 십중팔구는 숙식 때문에 사업주와 마찰을 빚습니다. 열악한 숙식 환경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사업주들이 숙식비를 일방적으로 책정하는 것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은 저항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사업주들은 임금을 덜 주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이주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숙식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청소년이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경우 수사단계에서 자유권 행사에 어려움이 많으므로 국가는 이들의 평등한 권리 행사를 위한 조건을 형성하고 유지할 책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개정 형사소송법'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피의자를 신문할 때 신뢰관계자를 동석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서는 "장애인을 상대로 수사를 할 때 장애인 본인 또는 관련전문기관으로부터 장애유무 및 등급 등을 미리 확인하고 장애유형에 적합한 조사방법을 선택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은 늘 '타자'로서 '외부'에 존재하였다.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과 경찰은 왕왕 사건을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일부 비정상적인 정신질환자들의 '병적인 행위'로 치부하였다. 강력범죄가 발생하였을 때에 그 문제를 축소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범죄를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강력범죄는 '평범한 일반인'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정신질환자'를 정신병원에 잡아 가두면 사회의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대중에게 심어주었다.
한국을 찾는 해외입양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 즉 '뿌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의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더 나아가 고국은 왜 어린 자신들을 너무도 쉽게 내팽개쳤는지, 혹시 입양과정에 불법적 요소는 없었는지 그 '진실'을 원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해외입양에 관여하였던 자들 중 불법행위를 한 자들과 불법행위를 묵인·방조하거나 심지어 권장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 영역에서도 그들은 큰 장벽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입증의 문제'와 '시효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건당 수수료라는 임금을 위해 전투적으로 일하던 K 학생이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였고 산재보험에 들지 않았던 H 씨에게 절반의 책임을 부담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H 씨는 K 학생이 자신의 근로자가 아니라며 산재결정의 취소를 구했습니다. 1심 법원은 K 학생이 근로자가 아니라며 산재처분을 취소하였고 K 학생은 그동안 지출된 치료비 전액을 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업 운영의 리스크는 배달일을 하던 학생에게 떠넘겨졌던 것입니다.
최저생활을 보장받고자 하는 국민들의 여정은 멀고도 험난하다. 수급신청자는 소득이나 재산이 최저생활 유지에 모자란다는 사실 외에도, 근로능력이 없고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유를 입증하긴 쉬워도 무를 입증하기란 원래 어렵다. 그런데 행정부가 만든 하위법령과 지침은 그러한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