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mtaeeun

나를 삼성의 나라에서 왔다고 소개할 때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처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부정을 하자니, 국내에서도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을 쓸 정도이니 '삼성의 나라'라는 말도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또 한국에 대한 질문에는 북한과 교회가 자주 등장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이게 설명하기에 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을 하지 않으려니 그 기업의 '유명세'에 의존해서 내가 나고 자란 나라가 설명되는 것 같아서 찜찜하고 불편했다. 이 회사에서 노동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있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부패 및 경제문제들이 이 회사와 같은 재벌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도 어려웠다.
케냐에서 처음 먹었던 식사도 우갈리였다. 식감이 약간 거칠고 단맛이 없다는 차이가 있지만 뭔가 백설기 같다는 느낌이 나서 자주 사서 먹고 또 얻어먹었다. 우갈리에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는 케일과 비슷한 모양새의 수쿠마 위키가 가장 대표적이다. 수쿠마(sukuma)는 스와힐리로 "밀다"라는 뜻이고 위키(wiki)는 한 주를 의미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구할 수 있고 또 돈이 많이 없어도 한 주를 버티게 한다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채소다.
건물을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도 건물을 지었고 건설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자재의 사용을 줄이기도 했다. 물론 케냐에도 안전한 건물관리를 위한 규제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은 제도적인 안전장치들을 위반하면서 뇌물을 통해 단속을 피하는 방법으로 지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불법건물에 입주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다수의 저소득층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지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약간은 인종주의적인 경향으로 "모두 똑같이 생긴 중국인들" 때문에 아기의 아빠를 찾지 못했다고 이 사건을 비하하고 비웃기도 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너희들은 왜 다들 똑같이 생겼니?"나 "야 칭총, 왜 너희의 이름은 접시가 깨지는 소리처럼 들리니?" 등의 불편한 질문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사실상 중국인이었고 중국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을 나에게 묻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인은 아니지만 똑같이 생겼다는 점에서 중국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이지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심란한 마음은 파리가 겪는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겪는 공포와 충격에 충분히 공감한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위해 공분하고 해시태그를 공유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뭔가 불편한 부분이 있다. 엊그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는 폭탄테러로 43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에 대한 세계인들의 분노라든가 해시태그 같은 것을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케냐에 다녀와서 내가 행복했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피부가 하얀 이가 피부가 검은 이들이 사는 가난한 곳에 잠시 머물다가 가지고 오는 흔한 감상 따위로 취급할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의 그 긍정적인 '감상'을 현실을 왜곡하는 순진함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만난 아이들의 환경은 정말 빈곤하고 빈곤하고 또 빈곤하다. 빈곤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케냐에서 사람들은 내가 한국 사람들이 한국어만 쓴다고, 또 학교에서도 한국어만 쓴다고 설명하면 깜짝 놀랐다. 케냐의 아이들은 집에서는 부모가 속한 공동체에서 쓰는 언어를 배우고, 또 동아프리카 지역의 공용어(Lingua Franca)이자 케냐의 국어인 키스와힐리를 배우고, 영국 식민지 시대의 영향이 남아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영어로 수업을 받는다. 덕분에 어디를 가도 3-4개의 언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상적이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나 역시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인사나 감사 정도는 키쿠유어나 마사이어 등의 언어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나이로비의 보랏빛 자카란다 꽃잎들이 떨어지는 때는 소우기라고 불리는 1-2개월 정도의 짧은 우기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때에는 작은 마을은 물론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서도 전기는 종종 나간다. 하물며 전기를 몰래 끌어다가 쓰는 지도에도 없는, 소위 슬럼(빈민가)으로 불리는 마을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전기가 나간 마을은 고요해서 아기들의 울음소리만 들린다.
학자들이 케냐의 역사에 대해 쓴 유명한 책들이 많지만,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만큼 진심을 담은 역사를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비록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수많은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은 괴롭고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손주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책에서도 찾기 힘든 식민지 시대와 독립 후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케냐 곳곳에서 울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갈 것이고, 또 이어나가야만 한다. 그러니까 역사는 책 한 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헤어져야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가던 길이어서 그랬는지 약간은 정신줄을 놓고 있었고, 창문이 살짝 열려 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마타투는 정차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창문을 거칠게 열더니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아이폰을 낚아챘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흔한 수법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는데, 그런데 또 모든 것이 마치 느린 화면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아이폰을 낚아챈 친구가 너무 급했던 나머지 그걸 내 옆 창밖에 떨어뜨린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