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mrami

오바마의 정책을 상당 부분 계승했을 힐러리가 당선되었다면 사드 배치를 번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국제법상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고 박근혜 정부도 정당성도 잃으면서 기존 정책을 고수해야 하는 부담이 줄었다. 그런데 정부는 급변하는 정세에 대한 관찰과 분석없이 트럼프 당선 다음날 바로 사드 배치를 기존의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서둘러 밝혔다.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성급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트럼프에게 표를 준 이들이 참을 수 없이 미웠다. 유색인종과 여성들마저도 많은 수가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그런데 이제는 왜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오랫동안 미국 사회에서 소외되어 왔다. 미국 경제가 나아졌어도 이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했다. 세계화에 따라 미국의 제조업 분야가 노동력이 싼 나라들로 생산기반을 옮기면서 교육 수준이 낮은 비숙련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진보층은 그것이 세계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만 했다. 그런데 사실일지언정 그런 말은 그들에게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핵무기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데 미국이 즉시 안보보장 약속을 철회해 버리면, 우리는 우방으로서의 미국을 잃는 시점부터 우리 자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핵억지를 갖추기까지 수 년간 안보의 공백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흔히들 수준 높은 원자력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핵무장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데 이점에 있어 한국과 일본은 크게 다르다.
한국과 미국 양국이 4년반 간의 협상끝에 원자력 협정안에 합의했다. 우리 언론은 일제히 동 협정이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우리의 핵 자율성을 확대했다, 우리의 핵주권을 확립했다는 등 찬사를 쏟아내었다. 그런데 미국쪽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동 협정이 영구적으로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 농축과 재처리 권리를 불허한다("continues to deny")고 소개했다. 한 미국 학자가 필자에게 왜 한국 언론은 도대체 이 협정을 높이 평가하는 것인지 물었는데, 말문이 막혔다. 각각 다른 협정안에 서명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된 일인가? 혹시 우리 정부가 가뜩이나 어려운 정국이 더 악화되는 것을 우려해 협상의 성과를 부풀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