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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흑백이다가 가끔 나타나는 파스텔톤 색깔들로 묘사된 남극은, 탐험대에 반드시 전속 화가를 포함시켜 그림을 그리게 했던 20세기 초까지 극지 탐사의 전통을 이 책이 잇는다는 것, 놀랍게도 지금도 오직 그림으로만 묘사될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온통 희지만 터키색, 청금색, 황토색이기도 한 얼음, 햇빛이 반사되어 노랗게 보이는 대륙, 푸르고 검은 기하학적인 무늬로 조각난 부빙의 바다.
천재들의 무리 중에서도 내가 처음 과학사를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제일 좋아하는 무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원자를 해독하고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두 기둥으로 현대물리학을 구축했던 이들이다. 마침 노벨상이 1901년부터 수여되었기에 이들 다수가 수상자로 이름을 날린 점, 과학사가 가장 철저히 연구한 대상이 이들이라는 점, 이후에는 대개의 발견이 대규모 협동작업과 자본에서 나오는지라 개인이 이름 날릴 기회가 적다는 점 등등 이 선택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모른 척 넘어가겠다.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유명한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에게, 올해는 각별한 해다. 첫 책이자 대표작인 '이기적 유전자'가 올해 출간 40주년이고, 3번째 책 '눈먼 시계공'은 30주년, 5번째 책 '불가능의 산을 오르다'는 20주년, 9번째 책 '만들어진 신'은 10주년이다. 정작 도킨스 자신은 감회를 밝히는 어느 글에서 우리가 10주년의 배수로 뭔가를 기념하는 것은 어쩌다 우리에게 손발가락이 10개씩 주어졌기 때문이라며, 만일 진화의 우연으로 우리 손발가락이 8개였다면 올해 이런 기념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쿨하게' 말했다.
저자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몸이 차 밖으로 튕겨났던 일화를 회상하며, 그런데도 산산조각 나지 않았던 앞유리창에 감탄한다. 그런데 손만 대도 깨지는 와인잔에 비해 강화유리는 왜 그렇게 튼튼할까. 답은 유리 중간에 래미네이트라는 플라스틱 층이 끼어서 파편들을 풀처럼 묶어주기 때문이다. 방탄유리에는 그 플라스틱 층이 여러 겹 있다. 저자는 뉴스로 도심 시위 장면을 보면서 '요즘은 강화유리를 쇼윈도에도 많이 쓰니까 시위대가 벽돌을 던져도 유리가 멀쩡하구나' 하고 감탄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의학, 생물학, 유전학의 발전으로 몸에 대해서 얼추 다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밝혀졌다. 알고 보니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 중 불과 10퍼센트만이 인간 세포였고 나머지 90퍼센트는 체내 미생물의 세포였던 것이다. 유전자 개수로 따지면 더 심하다. 인체에 간직된 인간 유전자는 2만여개인 데 비해 미생물의 유전자는 440만개다. 유전자 개수로 따지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았던 인간은 겨우 0.5퍼센트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