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mjongdae

과문한 필자는 국정원이 간첩을 잡는 데 왜 떡볶이 맛집 정보와 벚꽃 축제 일정과 서울대 공대 동창생 명부가 필요한지 알 길이 없다. 처음엔 간첩이 빨갱이니까 붉은 떡볶이를 좋아하는가, 했다. 간첩이 주로 카톡으로 지령을 수수한다는 이 새로운 학설이 국가안보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인지도 필자의 상상력으로 추론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언가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데는 아주 쓸만한 콘텐츠들이다. 국가는 모든 걸 보고 있었다는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느낌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마비시키는 단계를 초월하여 시민공동체를 유지하는 자유로운 인간정신의 정수리를 뚫어버릴 것이다.
사실 사드를 배치하기 어려운 사정은 미국 자신에도 있다. 개발에 착수한 지 25년이 지난 이 무기에 대해 미국 내에서조차 그 성능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아 극히 소량만 생산된 시제품에 불과한 무기체계가 사드다. 생산자인 록히드마틴이 배포한 자료에 의하면 사드는 40km 이상의 우주에서 가동되는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대기권에서 항공기발사 미사일을 대상으로 11번 실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설익은 무기체계를 국내에 또는 돈이 더 많이 드는 해외에 배치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박이다.
방만한 군의 무기소요는 놔둔 채 예산만 줄이는 방식으로 국방을 관리하니까 실체도 없는 페이퍼컴퍼니, 즉 엉터리 유령회사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각 군과 사업부서마다 하나씩 사업을 꿰차려고 하니까 엉터리 장비를 납품하고 튀는 한탕주의 세력이 득세하기 시작하여 한국군의 전 무기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양상으로 간 것이다. 이것이 지난 보수정권 7년간 약 70조원을 무기도입에 쏟아붓고도 군의 작전능력이 개선되지 않은 핵심 이유다.
어떤 군사전략이 채택되느냐에 따라 더 많은 자원을 배분받을 수 있는 조직이 달라진다. 한국군이 사드를 도입하게 되면 한국 공군은 이제껏 육군에 대한 지원군으로서 보조적인 위치에 불과하던 위상을 탈피해 일약 중심군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해상·수중 킬체인을 구축한다는 것은 해군에게는 일종의 복음이다. 해상초계기, 이지스함, 잠수함을 더 많이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지대지 미사일로 북한을 타격하는 군사전략을 채택한다면 유도탄사령부를 갖고 있는 육군에게는 축복이 된다.
가수 유승준이 병역 기피로 국내에서 매장되었다가 이제 와서 귀국하겠다고 하니까 여론이 난리다. 병무청은 유씨 주장의 허구성을 들춰내며 괘씸죄를 묻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잣대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게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유승준은 안 되는데 왜 황교안은 되느냐는 의문에 답을 듣고자 한다. 대부분 완치가 되는 만성두드러기가 왜 황교안에게는 불가능했는지, 그런 중증 환자가 어떻게 사법시험을 보고 출세가도를 달린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런 허약체질들이 국정을 이끌면 국방이 괜찮겠느냐는 더 절박한 의문에도 답이 필요하다. 이런 답을 하지 않고 또 무슨 국가안보와 공안을 말할 것인가?
동아시아에서 안보 문제는 제각기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맞물려 진행되는 강대국 정치의 양상을 확연히 드러낸다. 여기서 순수한 한반도 문제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남북한의 대결이라는 것도 두 맹수가 지켜보는 작은 우리에서 두 토끼가 싸우는 격이다. 지금이야 토끼들끼리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겠지만 이 맹수가 참견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반도 사드 배치 논쟁은 두 맹수가 직접 참견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의제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도 처음에는 남북한 전쟁이었지만 나중에는 미-중 전쟁이 된 것 아닌가? 예전처럼 우리는 한반도의 지정학은 불변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통해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라고 했다. 이 말이 최근 사드 요격체계 배치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같은 문제를 우리 정부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주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환영할 만하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태도로 나왔어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걸 내세워서 이도 저도 아닌 소신 없는 태도로 우물쭈물하다가 막차에 올라탄 박근혜 정부로선 뒤늦은 감마저 있다.
"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몇번 곱씹게 되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말이다. '값싼 박수', '도발'과 같은 자극적인 용어는 누굴 향한 것인가?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을 꾸짖는 중국과 한국의 정치지도자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 말고 누구이겠는가? 졸지에 이 지도자들은 값싼 박수나 받는 도발자가 되고 말았다. 반면 일본의 아베 총리는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품격 높은 지도자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어떤 미생들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엄성 때문에 갑질하는 강자 앞에서도 개가 될 수 없다. 그게 강자를 무시하는 것으로 오인되는 순간 더 큰 참극이 발생한다. 그런가 하면 실제로 개가 됨으로써 수직 서열화된 위계사회에서 용케도 생존을 도모해나가는 더 많은 미생들도 있다. 특이한 것은 이렇게 적응할 줄 아는 미생들이 적응할 줄 모르는 미생들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증오하고 적대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가 되었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며 약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경향을 보인다.
박 대통령은 "그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즉 자신은 부끄러운 것이 없으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부끄럽지 않으냐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사과를 해야 할 대통령이 거꾸로 사과를 받겠다고 나서는 셈이다. 윤창중 대변인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에서도 대통령은 지금처럼 자신을 신성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