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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유족들은 법원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내란목적살인죄는 무죄”라는 입장이다.
전 대통령 전두환씨 재임 당시 계엄사령관이 뗀 이후 40년 만이다.
“군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하는 차원”
개편 기무사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걸릴 예정이다
“역사의 기록은 야심가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항상 자신의 명령과 권위가 가장 잘 통하는 장소에서 일을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전두환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시작하기 위해 자신이 사령관이던 보안사령부에서 참모들을 불러
이병기는 자신이 몸 담았던 신군부의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이나 김영삼의 이른바 문민정부가 끝나고, 자신이 모셨던 이회창이 두 번이나 대선에서 석패하였고 그 와중에 위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에 관여하였다는 의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수 측이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 때는 주일대사로 복귀하였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장을 거쳐서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내게 되니 이 역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3선 개헌의 무리한 추진이 문제가 되어 후퇴하였다가 주일대사를 거쳐 다시 중앙정보부장으로 복귀했던 이후락의 관운을 연상시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말 청와대 홍보특보에 김경재 전 의원을 임명하였다. 원래 재선까지 한 야당 인사이다가 지난번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새누리당에 입당하였던 김경재 전 의원은 호남 출신이기도 하여 어찌 보면 여론이 영남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 측에 요구하여 왔던 탕평인사에 부합하는 인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김경재 전 의원이 유명해져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어쩌면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경력이 이른바 [김형욱 회고록]의 집필자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 집필자가 박정희의 딸을 대통령으로 홍보특보로 모시며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니 좀 비감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드디어 30% 아래로 내려갔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정권의 대안세력이 되어야 할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 선거는 좀처럼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이른바 박심(朴心)이 뒤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주영 의원이 떨어지고 유승민 의원이 당선된 것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 같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주자들 간의 토론회에서의 난장판은 빈축을 샀고, 특히 투표 개시일을 하루 앞두고 경선 규칙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논란까지 벌어진 형편이다. 이렇게 무관심과 비웃음 속에서 진행되는 제1야당의 당 대표 선거를 보다 보니까 국민들의 열광적인 관심 속에 진행되었던 박근혜 대통령 부친 시절의 마지막 제1야당 당 대표 선거 이야기가 떠올라서 안타까운 마음에 한 번 끄적여 보았다.
1979년 10월 26일 독재자 박정희에게 총을 겨눠 그를 죽인 김재규는 민주투사가 아니라 박정희의 입김이 곳곳에 서린 보살핌을 받아가며 출세길을 달려 왔고 그 직전까지 박정희 독재를 유지하고 반대자를 제거하는 공작에 열심이었던 독재자의 진돗개, 아니 충견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김재규를 속된 말로 빡치게해 박정희를 살해하기에 이르게 한 원인은 잘 알려졌듯이 당시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갈등이다.
화창한 가을 날씨를 보인 2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은 경찰 추산 5500명의 참배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35주기 추도식이 열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