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m-min-sik

프라하에서 소련군 탱크를 피해 기차 타고 달아나던 밤, 할아버지의 짐은 정말 단출했답니다. 그리고 맨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셨지요.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노력합니다. 삶에는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그런 물건들로 우리의 인생을 옭아맵니다. 할아버지는 그냥 아는 거예요. 인생을 즐겁게 사는데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언제든 떠나고 싶으면 자전거에 텐트 싣고 훌쩍 떠날 수 있는 겁니다. 할아버지의 멋진 인생에서 배웁니다. '언제든 비울 수 있는 삶.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
나이를 물어보니 69세란다. 이 나이에 지구 반대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 자전거 한 대 들고 와서 노숙하면서 여행 다닌다. 와우, 정말 멋지다. 나이 70 다 되어서 낯선 나라에 자전거 한 대 끌고 가서 곳곳을 누빈다. 잠은 텐트 치고 노숙하고, 그 나라에서 제일 싼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고향에서 친구들은 나이 70이면 다들 집에서 TV만 본단다. 그러다 서서히 늙어간다고.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단다. 죽을 때까지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다닐 거라고.
자전거 여행, 생각만 해도 이렇게 마구 행복해지는 이유가 뭘까? 네, 대학교 1학년 때 자전거 전국일주하던 추억 덕분이지요. 하루 200킬로를 달리고, 한계령을 자전거로 넘던 그 시절이 즐거웠던 겁니다. 나이 50이 다되어서도,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결국 스무살에 나를 가장 가슴 뛰게 했던 일인 겁니다. 그 순간, 깨달았어요. 아, 내 인생의 방향은 이미 20대에 결정되었구나. 지금 나는 그때 정해진 항로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뿐이구나. 20대에 즐거웠던 일을, 남은 평생 계속 하면서 사는 거구나. 20대들에게 독서, 여행, 연애를 즐기라고 권하는데요. 생각해보니 내 자신이 그랬어요.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그 부모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었습니다. 유가족과 희생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뉴스꼭지가 MBC 로고를 달고 방송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지난 2012년 MBC 파업 이후, MBC 뉴스가 망가지고 보도의 공정성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뉴스가 세월호를 침몰시킨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론 형성의 책임이 있는 언론이라면, 희생자 가족들의 상처는 보듬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관련 보도는 국민들의 여론을 분열시키고, 유가족을 정치적으로 고립시켰을 뿐, 그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저는 짬만 나면 하루 15분씩 책을 낭송합니다. 낭송은, 단순히 소리내어 읽는 낭독은 아니구요, 그렇다고 책을 완전히 외우는 암송도 아닙니다. 정좌하고 앉아서 논어나 금강경 같은 동양 고전을 소리내어 읽습니다. 그러다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있으면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책을 보고 소리내어 읽습니다. 이렇게 몇번을 반복해서 흔들림 없이 글이 소리가 되어 나오면, 즉 귀에 들리는 소리가 낭랑하게 자리를 잡으면,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을 다 읽었다. 왜냐고? 심심해서. 부모님이 출근하신 후, 집에 혼자 있는데 TV도 없었다. 어머니 학교 따라 이사 다니다 보니 친구도 별로 없었다. 심심했다. 그때 내 눈에 책장에 꽂힌 세계문학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애들 책 안 읽는다고 뭐라 하는데, 애들이 심심할 여유가 없는 탓이다. 책 속의 이야기에 빠지려면 기본 10분은 필요하다. 하지만 스마트폰 게임은 3분도 좋고, 5분도 좋다. 짧은 시간 짬이 나면 책보다 즐길 게 너무 많다. 아이에게 독서하는 습관을 길들이려면 먼저 삶의 여유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종마가 교미 과정에서 암말의 뒷발굽에 채여 비명횡사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등장하는 게 시정마다. 일명 애무하는 말. 시정마는 암말에게 작업을 건다. 뒷발질하고 뿌리치는 암말을 어르고 달래서 암말을 흥분시키는 역할을 하는 잡종말이다. 두세 시간에 걸친 시도 끝에 암말이 흥분하여 상대를 받아들일 자세를 취하면, 시정마는 끌려나온다. 공들여 흥분시킨 암말을 눈 앞에 두고 끌려나오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소리도 지르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냥 질질질, 끌려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