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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하나인데, 부모가 죽고 나서 혼자 외로울까 봐 걱정이라는 친구가 있어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야, 요즘은 부모가 90에 죽으면 자식도 나이가 60이야. 그 나이에 외로우면, 지가 인생을 잘못 산 거지, 어찌 형제를 낳아주지 않은 부모 탓이겠냐?" 100세 시대, 인생을 좀더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10대 20대에 공부하고, 30대 40대에 일하고, 50대 60대에 놀다가 간다.' 이렇게 20년씩 딱딱 끊어서 인생의 단계를 나눌 수 없어요. 100세까지 사는 인생이므로 나이 칠팔십에도 일을 해야 하고, 오륙십에도 공부를 새로 해야 합니다. 일과 공부와 놀이가 돌고 도는 순환의 삶을 사는 시대거든요.
어느 날, 쇼 프로그램 연출의 대가이신 신종인 부장님이 저를 찾으셨어요. "너, 동시통역대학원 나왔다 그랬지? 저거 통역 좀 해봐라." TV에서는 1998년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이 방송되고 있었어요. 그즈음에는 국내 채널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생중계하는 곳이 없어서 부장님은 AFKN으로 보고 계셨지요. 그러다가 답답하니까 인간 통역기를 동원하신 거예요. 예능 조연출은 시키면 뭐든 합니다. "잘하네? 넌 통역사를 하지 MBC에는 뭐하러 들어왔냐?" 그래서 말씀드렸죠.
X축에 시간을 들인 만큼 Y축의 실력도 정비례해 올라가면 좋겠지만, 영어 실력은 계단식 그래프를 그리며 올라가더라고요. 아무리 공부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한데, 질적인 변화는 금세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양이 쌓여야 질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영어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영어 고수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그 첫 번째 계단을 오르는 순간, '이거구나!' 하는 희열을 맛본 다음에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포기하진 마세요.
"기독교 신앙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성경 한 권 얻을 수 있겠습니까?" '호, 이런 기특한 신병을 봤나' 하는 흐뭇한 얼굴로 군종병이 문고판 성경책을 주더군요. "기왕이면 성경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영어로 된 성경책을 빌려주십시오." 그래서 영한 대역 성경책을 한 권 얻었습니다. 작업하다 쉬는 시간에 남들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 피우는 동안 저는 한구석에 앉아 영어 성경을 읽고 외웠습니다. 방위병 막내가 토플책을 보다가 걸렸다면 엄청나게 맞았겠지요. 하지만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않더군요. 흔히들 군대 고참은 하느님보다 높다고 하는데, 고참도 하느님은 무서운가 봐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선별적 복지 제도가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무능함을 전시하고, 자신의 불운을 과장하고, 외롭고 불행한 인생임을 증명해야 복지 수급을 받을 수 있다. 무상급식 논쟁에서도 드러났듯, 밥을 굶는 아이가 밥을 먹기 위해 부모의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CNN 뉴스를 틀어놓고 공부하면 아는 단어만 들리고 모르는 단어는 죽어도 안 들립니다. 테러리즘, 파리스, 프레지던트 등 언뜻언뜻 들리는 단어 몇 개로 내용을 추리하고는 CNN 뉴스의 70퍼센트를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건 제대로 된 영어 공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정말 CNN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면 뉴스를 받아쓰기해보세요. 자신이 써놓은 문장이 말이 되면 제대로 들은 거죠. 그렇지 않다면 CNN 청취로 영어 공부 하지 마세요.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기초 회화를 들으며 따라 하고 외우시는 편이 낫습니다.
지난 정부도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4대강 사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녹조의 창궐을 불러왔다. 이번 정부도 창조경제를 한다면서 미르 재단이며 K 스포츠 재단을 속도전을 밀어붙이더라.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게 탈이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삽질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잠시 삽질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게 낫다. 쉬운 해고와 성과연봉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에게 권하노니, 부디 휴식을 좀 취하시라. 그대들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탈이다.
간판 옆 표지판이 나를 불렀어요. 화요일 수요일에 쉰다는 간판의 알림이 마치, '당신들도 1주일에 5일 일하고 2일은 쉬지 않나. 그럼 우리도 주중 2일은 쉬어야 하지 않나' 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진 식당 주인이 차려주는 식사라면 맛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서울 시내를 걷다 24시간 영업하는 순대국집이나 설렁탕집 간판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밤을 새우며 일하다 보면, 목숨을 조금씩 덜어서 팔아서 사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왜 24시간 식당을 돌릴까요? 저는 서울 시내 24시간 영업 식당이 많은 이유는, 땅값이 사람값보다 비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이제 열심히 일하는 맞벌이 부부들이 정치적으로 조직화하여 스스로의 목청을 높여야 합니다. "무상보육, 어떻게 됐냐? 무상급식, 왜 철회했냐? 반값등록금, 어찌 됐냐?" 하나하나 따져 물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진 이유를 짚어봐야 합니다. 전셋값 폭등으로 지하철 난민이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에 대해 정치의 책임을 따져봐야 합니다.
출퇴근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다 젊은 부모들이에요. 20대나 독신자는 굳이 일산이나 김포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가지 않아요. 회사에서 가까운 오피스텔이나 학군이 좋지 않은 동네의 저렴한 빌라에서 살면 되거든요. 우리의 삶이 힘들어지는 건, 부모가 되는 순간입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거, 굳이 책이 아니라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젊은 세대가 임신 출산 육아를 포기하는 건 그들이 현명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