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junman

오직 다음 선거만을 내다보는 성급함과 그에 따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리고 그 과정에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계파 패권주의, 이게 바로 야당을 골병들게 만드는 주범이다. 주요 이슈에 대한 이렇다 할 대안도 없이 증오를 동력으로 삼는 '심판과 응징'에 몰두하다가 종국엔 일을 그르치는 건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보아온 장면인데, 혁신마저 그런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학생들의 벼락치기 공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왜 정당의 혁신에 대해선 벼락치기 승부수를 보이지 않느냐고 몰아세우는 것일까?
정치인이나 논객의 인기는 반대편을 조롱하거나 아프게 만드는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지자들의 환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논쟁이란 상처를 주고받는 게임이다. 언젠가 고종석이 잘 지적했듯이, 그런 게임에선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적 삶에선 더할 나위 없이 선량하고 순수하다는 점이다. 이에 관한 수많은 증언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순수와 정치의 만남이 문제인 걸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취업준비생은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어른들의 얘기는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폭력'에 대한 저항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용이 되려고만 할 뿐 개천의 미꾸라지들은 죽든 살든 내팽개쳐 두는 집단적 습속을 갖고 있다. 사실상 전국민적 합의하에 '미꾸라지 죽이기'가 일어나는 현실에서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 폭력으로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내년까지 2만7000명이 지방으로 더 내려가겠지만, 이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 역시 20%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가? 무엇보다도 자녀교육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인서울'이라는 속어의 유행이 잘 말해주듯이, 서울 소재 대학에 대한 집착이 병적인 수준으로 대중화된 세상에서 공부하는 자녀를 지방으로 데리고 내려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인서울' 강화 정책을 씀으로써 오히려 혁신도시 사업의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교육부가 추진한 전국 4년제 대학 204곳의 2015학년도 정원 감축분 8207명 중 7844명(96%)이 지방에 몰려 있다.
많은 이들이, 특히 진보 인사들이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세상'을 개탄한다. 그러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게끔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과연 올바른 해법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꿈과 희망을 품곤 하지만, 모두가 다 용이 될 수는 없으며,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며,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개천에서 난 용을 향해 박수를 치고 환호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살 만하다고 자위하는 동시에 '희망 고문'을 사회적 차원의 정책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일을 계속해오지 않았던가?
한때 좋은 덕담이었던 "꿈을 가져라"라는 말이 이젠 노골적인 냉소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꿈을 가져라"라는 말의 변형일 텐데, 이 말을 제목으로 내건 책의 운명도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 2010년에 나온 이 책은 300만부 이상 나갈 정도로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는데, 이젠 이 책에 대해 비판적인 글이 어찌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일일이 세기조차 힘들 정도다.
물질적 서열의 굴레에서 벗어나 각자 다양한 가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에 만족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한사코 모든 사람들을 일렬종대로 세워 서열을 매겨야만 직성이 풀린다. 삶의 만족과 보람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사회경제적 비교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표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은 끝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속 전시 상태로 살아가야만 한다.
먹이사슬 관계를 온몸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이들이 놀랍게도 아직 갑을관계의 본격적인 현장에 뛰어들지 않은 대학생들이다. 미리 연습을 하려는 걸까?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가 출간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은 대학생들의 '대학서열 중독증'을 실감나게 고발하고 있다. 오 박사는 대학의 수능점수 배치표 순위가 대학생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서열이 한두개 차이 나는 대학을 '비슷한 대학'으로 엮기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서열이 앞선다는 대학의 학생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흥분한다.
장 교수는 진보 좌파에게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신화들을 열거하면서 그 허구성을 폭로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신화, 주주 자본주의가 노동자의 저임금과 비정규직 양산에 책임이 있다는 신화, 삼성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을 부풀리고 외국 자본을 악마화하는 애국주의적 포퓰리즘 신화, 소득 1차 분배도 안 되는 현실을 외면하면서 벌이는 '자산 불평등 논쟁' 신화 등 수많은 신화들이 실증적으로 격파된다. 이 정도면 논쟁이 크게 벌어질 법도 한데 별 논쟁이 없다. 자본주의를 추상의 영역으로만 다뤄온 논객들에겐 반론을 할 실증적 자료가 없기 때문일까?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론’을 둘러싸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 던질 메시지(콘텐츠)가 없다는 것”이라고 반박한 데 이어, 이번에는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진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