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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 광풍'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살던 곳을 떠나 지방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서울 학생들도 고통을 당하지만, 인서울 진입에 성공한 지방 출신 학생들은 비싼 학비와 주거비 문제로 빈곤의 비애를 겪어야 한다. 수명이 늘어난 반면 노후 자금이 부족해 퇴직 후에도 은퇴하지 못하는 '반퇴 시대'에 부모들은 또 무슨 죈가. '인서울 대학'에 자녀를 보낸 지방 부모들은 '반퇴 푸어'가 아니라 '당장 푸어'가 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며, 덩달아 지방 경제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
야권 지지자들에게 정권교체는 선이다. 절대적 선이다. 진보 언론엔 총선 패배와 정권교체 실패의 가능성을 '역사의 죄악' '역사의 죄인' 등과 같은 살벌한 단어들로 단죄하는 글들이 자주 실린다. 여권 지지자들, 즉 절반의 국민을 '역사의 죄인' 이하로 여기는 발상이건만,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점잖은 분들까지 앞장서서 그렇게 죽느냐 사느냐 식으로 비분강개하는 열변을 토해내는 상황에서 정권교체를 방해한다고 생각되는 '내부의 적'은 멀리 있는 적보다 더 증오해야 할 표적이 된다.
현재 새누리당 내부에 울려 퍼지는 '박 타령'은 민주주의 원리에 근거한 정치적 행위라기보다는 지도자를 교주로 모시는 종교적 행위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기준으로 처음엔 '친박'과 '비박'이 나오더니, '원박(원조 친박), 종박(추종하는 친박), 홀박(홀대받은 친박), 멀박(멀어진 친박), 짤박(짤린 친박), 탈박(탈출한 친박)' 등으로 분화되었다가, 이젠 '진실한 사람'과 '친박'을 합쳤다는 '진박 타령'이 난무한다.
많은 네티즌들이 근거 있는 비판과 근거 없는 인신공격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민주시민으로서 엄연한 결격사유일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모욕'에 해당하는 범죄다. 인격모독을 하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현저히 낮은 인권감수성을 지녔다. 무엇보다 '열등감' 운운하는 이들은 자신이 뿌리깊이 느끼는 콤플렉스를 모든 것의 판단기준으로 삼아 타자에게도 투사한다. 줄세우기식 서열주의 한국사회에 적응도가 높을수록 열등감 유무와 극복여부가 인간분류의 절대 잣대가 되나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벌이는 내분 사태의 주요 원인은 문재인·안철수의 문제라기보다는 호남 유권자들의 분열이다. 언론은 '호남 민심'이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호남은 노무현 시대 이후 더 이상 압도적 다수의 정치적 견해가 같은 과거의 호남이 아니다. 그래서 야당 내분의 교통정리 기능을 상실하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거의 여왕'은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이다. 박 대통령이 이 별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부끄럽거나 불쾌하게 여기면 좋겠다. 선거와 정치적 싸움에 능한 것은 국민행복에 별 도움이 안 될뿐더러 역사에 남을 업적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대학 전공에 걸맞게 '기술의 여왕'으로 다시 태어나면 안 될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출간한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의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죽창이라는 단어가 섬뜩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850만명,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가 230만명,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에 이르며, 변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이 더욱 섬뜩한 게 아닐까. 더더욱 섬뜩한 건 그건 각자의 능력에 따른 정당한 차별이므로 각자 알아서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발상이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칙이 지배하는 정글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데에 전율을 느껴야 옳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가 정치를 단지 구경거리로 소비하고자 한다면, 한국 정치인들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구경꾼의 분노와 저주를 유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노와 저주는 관심의 산물이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우리는 욕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다음에 나올 정치 뉴스를 기다리곤 한다.
정치는 여전히 퍼지식 사고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흑과 백의 옛날을 그리워하는 정도를 넘어서 현재는 물론 미래도 선명한 흑백의 세계일 뿐이라는 자세를 취한다. '0.5 진보'나 '0.5 보수'에 불과한 집단들마저 '정체성'과 '선명성'을 아름다운 단어로 여기는 반면, '타협'과 '절충'을 더러운 단어로 여긴다. 비난받을 만한 '야합'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타협을 무조건 야합으로 보려는 충동이 충만하다.
우리는 정치혐오가 나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치인들에겐 매우 좋은 것이다. 정치혐오 덕분에 유력한 경쟁자의 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정치는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이 애정 어린 덕담으로 건네지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치혐오는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철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늘 명백한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닐망정 정치혐오를 증폭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과거 과자가 귀하던 시절 어린애들이 과자에 침을 퉤퉤 뱉어놓음으로써 자기 소유권임을 분명히 해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