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junman

혹 진보는 보수로부터 배울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가?
조선일보는 강준만 교수의 새 책 서평을 1면에 '단독'으로 실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근대화 자체가 그런 약육강식의 문법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었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개인과 가족 차원에선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따라 떵떵거리며 살아보자는 꿈을 안고 전투적인 삶을 살아온 게 아니었던가. 신분제는 120여년 전에 철폐되었다지만, 신분제의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그 알맹이는 지금도 건재하다. 한국의 성공한 엘리트들이 평소엔 제법 점잖은 척하는 모습을 유지하다가도 자신의 신분이 인정을 잘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입버릇처럼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을 거칠게 내뱉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선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해선 안 될 갑질의 기준을 세우고, 각 항목별 표준화된 점수를 근거로 전반적인 계량화를 하는 시도를 해보자. 이를 근거로 분기별 또는 반기별 '평균 이상 기업 리스트'와 '평균 이하 기업 리스트'를 작성해보자. '톱 10'도 좋고 '톱 20'도 좋다. 언론은 원래 '리스트 저널리즘'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서열이 있는 리스트를 사랑하므로 이 리스트를 열심히 보도할 것이다.
매년 발표되는 교수들의 논문 수는 7만 편이 넘는다. 천박한 발상일망정, 이걸 비용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전체 교수 인건비의 절반 정도는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 논문들이 널리 활용된다면 이런 천박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논문은 관련 연구자 10여 명 정도만 읽고 사실상 사장된다는 말을 학계에선 공공연히 하고 있다. 논문이 그 정도로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은 살벌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뉴스 의제를 사건·사고라는 피상의 세계에만 가두는 식으로 왜곡해왔고, 이젠 이게 부메랑이 되어 사건·사고에 이해관계나 특정 이념성·정파성을 갖고 있는 독자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자업자득이라고 말하기엔 언론이 처한 모든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 독자와 같은 눈높이를 갖기 위해 애써온 평등주의의 실현으로 자위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야 할 것인가?
열정을 선거철에 특정 후보에게만 바칠 게 아니라 두 선거철 사이의 훨씬 더 많은 기간에 이슈와 정책에도 나눠주면 안 될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사람에겐 열정을 바쳐도 '도구와 장치', 즉 제도와 법엔 열정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 후에도 승리를 한 후보에 대한 '무조건 찬성' 아니면 '무조건 반대'의 전선이 지속돼 모두가 다 실패하는 비극이 빚어지곤 했다. 국민 통합이나 화합은 정치인을 자신의 분신이나 우상처럼 대하는 '팬덤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난 2015년 고용노동부 장관의 '청년 간담회'에 참석한 어느 취업준비생은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어른들의 얘기는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왜 그럴까? 정상근이 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청춘이다〉(2011)라는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상식' 때문이다. "야 웃기지 마, 일단 좋은 기업을 들어가야 해. 솔직히 한 달 100만원 주는 직장이랑, 250만원 주는 직장이랑 얼마나 차이가 나는 줄 알아? 시작부터 좋은 데 가지 않으면 넌 평생 그 바닥에서 썩는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네가."
대통령에서부터 각급 지방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행정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중립 영역을 법으로 제도화해 넓혀 나가면 된다. 이걸 공약으로 내걸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정치세력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편 정치세력이 집권했던 기간 동안 쌓인 문제들을 청산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뜻일망정, 그로 인해 승자 독식은 강화되고, 반대편은 이를 갈면서 정치를 '밥그릇 수복'과 재청산의 기회를 얻는 투쟁으로 환원시킨다.
우리는 가급적 좁은 곳에서 떼지어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유는 단 하나. 공장식 밀집사육 방식을 택하는 이유와 같다. 공간 이용의 효율성 덕분에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 과감하게 풀자"는 정부의 슬로건을 비롯하여 그간 외쳐진 수도권 규제 철폐나 완화의 논리들을 살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