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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보호법 하위 항목이자 청소년의 콘돔에 대한 접근성을 저해하는 유일한 법적 근거로 작용하는 여성가족부 고시 제 2013-51호는 아무도 보호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길거리'만 검색해도 포르노그라피와 다를 바 없는 이미지들이 즐비한데, 콘돔이 유해하다는 20년 전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결정은 대체 누구를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아니 그래도 청소년이 섹스라니..."라는 감상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발현되면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 뿌리 깊은 불편이, 10대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그 막연한 경향성이, 청소년과 성(性)을 같이 두지 못하는 보수성이 청소년을 안전한 성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섹스의 존재만 알 뿐, 그 행위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무지한 호기심만 많은 이들은 포르노를 보며 섹스를 배운다.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총기를 휘두를 확률이 높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섹스라는 행위를 실제적으로 접하는 계기가 포르노라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피임에 대한 개념도 없고,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고, 상호합의에 대한 개념도 없고, 만족스럽지 않은 섹스에 대한 개념도 없고, 함께 서로의 신체를 탐구할 필요성에 대한 개념도 없다. 그저 한 쪽이 넣으면 다른 한 쪽이 신음을 쏟아내고, 한 쪽의 만족감이 사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되면서 끝난다. 그런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는 섹스이다.
콘돔 자판기는 지하철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의 경우는 어떨까? YTN은 3일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등장한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를 소개했다. 십대들의
엄밀히 말하자면 콘돔은 애초에 청소년에게도 판매가 가능한 상품군이다. 다만 그중 일부 특수형 콘돔이 '신체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임상 결과도 없는 굉장히 애매한 근거를 기준으로 유해하다고 판단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누구나 구매가능한 콘돔보다 명백하게 청소년유해약물로 지정되어 있는 주류에 대한 규제가 훨씬 덜한 실정이다.
일반적인 인식을 고려하면 청소년과 콘돔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아직도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인식이 만연하고, 인터넷에서는 일반 콘돔과 성인용 콘돔의 구분 없이 콘돔을 사기 위해서는 무조건 성인 인증을 해야 한다. 피임이 필요한 청소년들은 어디서 콘돔을 구할 수 있을까? 청소년임을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은 역시 교복이다. 그래서 교복을 입고 콘돔을 사보았다.
"콘돔이라니? 날 사랑하긴 하는 거니?" 진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지만 최근에 장기연애를 하고 있는 지인을 통해 이런 상황이 실제로 존재함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만나왔고, 결혼도 어느 정도 생각 중이고,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서 오히려 이런 발언을 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연애의 그 어떤 단계에 있든 사랑하면 콘돔을 쓰지 않는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피임하지 않을 것을 강요하는 것은 오랜 연인에 대한 감정적 성적 폭력이며, 오히려 연인관계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경고등에 해당한다. 결혼을 했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씻고 싶다는 말에서 섹스를 읽고, 택시 타면 비싸다는 말에서 섹스를 읽는다. 무슨 말을 해도 심드렁하던 남성이 '혼자 있기 싫어'라는 말에는 눈을 밝힌다. 남성을 전부 틈만 나면 섹스만 노리는 짐승으로 표현해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여기어때가 광고를 통해 보여주는 그들의 유머코드이다. 영상으로 보면 짐짓 웃고 넘어갈 만한 사안이지만(실제로 영상 속 여성은 섹스를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현실에 대입해서 보면 섬뜩한 부분도 없지 않다. 데이트 성폭력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배경도 결국은 영상 속 상황과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게 여성의 말에서 섹스라는 행간을 읽는 오해에서 시작되는 범죄가 아니던가.
콘돔의 경우, 어떠한 파라벤이 보존제로 사용되는지, 또 얼마나 사용되었는지, 애초에 사정지연형 콘돔의 국소마취제에 파라벤 성분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데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그와 같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한 함유량을 알아보기 위해 식약처에 문의해보아도 '기업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성기에 닿는 물건에 특정 성분이 얼마만큼 함유되어있는지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먹는 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내 몸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알 수 없다.
콘돔을 떠올리면 뭔가 야하고 민망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따져봐야 할 '생활용품'이다. 내 몸 가장 소중한 곳에 닿는 것인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친밀한 순간에 사용하는 도구가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의 몸속에 아무거나 집어넣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옷 고르듯이 콘돔을 고르거나, 먹거리만큼 콘돔에 신경 쓰지 않는다. 유기농 화장품은 챙겨도, 콘돔은 별생각 없이 그냥 쓴다.
혹자는 콘돔의 존재를 알리면 갑자기 청소년이 문란해져 섹스만 주구장창하는 색마집단이 될 것처럼 주장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미국에서 콘돔을 교내에 비치하기 시작한 90년대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콘돔 비치 전과 후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의 비율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관계를 기존에 하던 학생들이 피임을 정확히 하는 비율만 늘었다. 지극히 이상적인 결과였다. 콘돔교육이 만능이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콘돔과 피임을 가르친다고 해서 갑자기 우르르 모여 섹스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