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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영면하신 뒤 누구는 선생의 글에서 배운 것이 없다고 밝혀서 논란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고 안 배우고는 그만의 자유다. 쟁점은 '배움'의 의미이다. 문학이론과 미학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나는 요즘 '이론'의 한계, 이론적 글쓰기의 한계를 느낀다. 이 한계는 선생이 보여준 에세이적 글쓰기의 의미와도 관련된다. 범박하게 말해 한국 사회가 '헬조선'이 된 것이 이론이 부족해서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과 이론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배운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각자의 삶을 바꾸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그 무엇이 아닐까.
3. 나무야 나무야 (1996년, 돌베개) 감옥에서 세상에 나온 뒤 8년 만에 선보인 책. 허난설헌의 무덤, 소광리 소나무숲, 백담사, 모악산 등 국내 여러곳을 여행하며 쓴 25편의 글들이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이사를 하고 나서 한동안 아침마다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삽으로 시멘트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어디서 또 공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며칠 지나면 끝나겠지 싶었는데 웬걸, 한 달이 지나도 계속 같은 소리가 들렸다. 지익- 지익-. 소리도 박자 맞춰 규칙적인 것이, 도대체 무슨 작업인지 몰라도 무척 짜증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동네 할머니가 보행보조기를 밀면서 천천히 걷는 소리였다. 머리가 하얗고 등이 굽은 할머니였다. 아. 그랬구나. 다음 날 아침부터 신기하게도 그 짜증스럽던 소리가 그냥 '아, 할머니 걸으시네.'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