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una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괴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인물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따졌을 때 심은경의 캐릭터는 어디로도 갈 수 있다. 오래 전에 법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자체적인 논리를 세워놨기 때문에, 이 인물은 오로지 자신만이 주인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이 인물을 '선'의 역할에 놓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행동 가능성을 살리지 못한다. 그 결과 이 인물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분량 면에서 조연으로 밀린다.
수많은 영화가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지만 '사울의 아들'처럼 들어가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끔찍한 역사나 사건을 재구성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어느 단계부터 소재를 착취하게 되고 결국 선정적인 포르노가 된다. 아무리 정당한 동기가 주어진다고 해도 이 과정을 막기는 어렵다. 여기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건 이야기꾼의 인권감수성과 예술적 상상력이다.
그냥 어이가 없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이 사랑받고 유명한 이유는 이 작품이 두 인간의 사랑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두 여자의 사랑을 그렸고 그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성애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결코 '남사스러워서' 외면하다가 어쩔 수 없이 두 인간의 보편적인 무언가로 퉁치고 넘길 것이 아니다. [캐롤]은 여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들이 여자와 남자였거나 두 남자였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노출 장면이나 담배 장면에 블러나 검열이 없다는 걸 비판하는 건 어이가 없다. 그런 건 없는 것이 정상이다. 당신이 그런 블러가 사방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걸 봐야 만족한다면 그건 불필요한 자체 검열을 남발하는 대한민국 텔레비전의 인질이 된 상태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이런 걸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한다.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이런 걸 애들이 볼까봐 두려워 한다면, 일단 애들은 이미 그보다 더 심한 것들을 보고 있고, 넷플릭스의 성인용 컨텐츠를 애들이 보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건 당신의 신용카드 관리이다.
아직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헤이트풀 8'을 보지 못했다. 될 수 있는 한 개봉 당일인 목요일에 챙겨 볼 생각인데, 그날도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영화는 보지 못할 것이다. 타란티노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영화는 2.76:1 와이드스크린 스펙터클 대작으로, 이 경험은 오로지 제대로 된 70㎜ 필름 상영이 가능한 대형 상영관에서나 가능하다.
수상 결과는 시상식이 끝나면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배우들도 자신을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상 수상자라고 광고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올해 최고의 영화와 영화인을 뽑는 의미가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청룡영화상 시상식 진행자인 김혜수는 "청룡은 정말로 상을 잘 주죠!"라고 외쳤고, 대종상에 비해 좋은 선정이란 말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이 선정이 올해 한국 영화를 결산하는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제대로 된 장르 호러는 만들어지 않는 걸까? 유행이 지나서? 흥행 안전주의 때문에? 모두 맞는 이유겠지만 나는 다른 하나를 지적하고 싶다. 더 이상 한국인들은 장르 호러 따위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거나, 굳이 공포를 느끼기 위해 영화관을 찾을 필요가 없는 부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호러는 사치스러운 장르이다. 스크린에서만 존재하는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하려면 권태가 필수다. 하지만 현실이 공포이고 증오와 불안이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굳이 그것만을 찾아 극장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반세기 전에는 중립적인 남자 연기였던 것이 지금은 역겨운 조연 악당 연기가 되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당시에도 내재되어 있던 불쾌함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잡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반세기 전 사람들에게 [화려한 유혹]을 보여주어 보라. 그가 내뱉은 "계집년은 뭘 모른다" 따위의 대사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관객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나는 몇 개월 동안 일 때문에 필름이 소실된 6, 70년대 한국 영화의 각본들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데 읽다보면 그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에 어이가 없어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60년대가 현대인 줄 알았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바뀌지 않는 세계에서 사회비판물은 장르화된다. 그리고 그건 별로 좋은 장르도 아니다. 드래곤과 마법사와 엘프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와는 달리 대한민국 사회비판물 장르에서 소재로 가져오는 건 딸 뻘인 젊은 여자들을 만지작거리고 폭탄주나 마시는 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줄 아는 지루하고 못생긴 늙은이들뿐이다. 이들이 하는 짓은 늘 똑같고 이들과 맞서는 사람들의 승리와 좌절의 코스도 비슷하다. 지루한 악당은 지루한 이야기를 만들고, 지루한 세상은 지루한 예술을 만든다.
지난 몇십년 동안 '여전사'는 성차별에 대한 알리바이로 존재해왔다. 이중엔 알리바이로 가볍게 넘기기엔 아쉬운 훌륭한 캐릭터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 역시 쉽게 하나의 캐릭터 옆에 묶인다. 남자 주인공 옆에서 와이어 액션을 하는 섹시한 조연. 이들의 액션이 쉽게 페티시화되는 건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