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una

경제적 빈곤, 장래의 불안함, 자신만의 공간의 소중함, 준장거리 연애의 난감함, 사회적 압력은 동성애자들만의 주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침대에서 상대방의 요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지수의 태도는 이성애자들도 배워 마땅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담〉은 이성애 연애 이야기로 전환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연애담〉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이 터진 것은 이 영화가 오로지 여성 동성애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과 디테일을 잔뜩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고 언젠가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직사각형의 한계를 초월할 것이다. 그건 바꿀 수 없는 미래이다. 하지만 기술과 그 신기함에 의지하며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같다. 그리고 그건 할리우드 밖에서 영화를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희망적인 일이다. 대자본 스펙터클이 일상화되었다면 다른 일상이 그 스펙터클과 일대일 대결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이런 영화들에 대한 비판에서 중요한 점은 이들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 개별영화가 아닌 이런 부류 영화의 유행과 흐름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알탕 영화들은 대부분 여성혐오적이지만 그와 별도로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를 하나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영화들이 비정상적으로 많고 그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풍토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런 영화들 중 상당수는 핑계만 생기면 조선 땅을 뜨거나 뜨려고 발버둥치고 주인공들은 대부분 탈주를 꿈꾸고 그러는 게 가능한 사람들이다. 상하이, 만주, 도쿄, 블라디보스톡, 하와이. 목적지는 어디라도 상관없다. 이러니 이 영화들이 내민 진지한 주제보다 '아가씨'의 숙희가 속으로 내뱉는 독백이 가장 솔직해보이고 또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한 밑천 잡아서 조선 땅 뜬다. 조금만 참자. 이 시골뜨기 종년들." 하긴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월호 영화들의 존재는 오로지 자연스러운 망각만이 애도의 유통기한을 설정하며 어떤 때는 그런 망각마저도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극을 일으킨 원인이 아직도 남아 있고 제대로 된 해결책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극과 그 원인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다. 만약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이 계속된다면 그 과거는 계속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야기꾼의 임무이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관객들의 임무이기도 하다. 이런 기억의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영화는 오싹하면서도 친숙하다. 벤자민이 쓴 대사와 지문들은 의식없는 기계가 사람을 흉내내는 티가 역력하다. 의미도 없고 방향은 무작위적이다. 글자로 만들어진 좀비이고 유령인 셈이다. 글 쓰는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묘하게 친숙하다면 그건 <선스프링>의 시도가 옛날 초현실주의자들의 실험과 닮았기 때문이다.
박찬욱의 '아가씨'를 칸영화제에서 먼저 본 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표현은 '메일 게이즈'(male gaze·남성의 시선)다. 이 영화의 동성애 베드신이 남성 시선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알 것 같다. 처음부터 박찬욱이 '캐롤'의 섹스신처럼 온화한 것을 찍을 거라고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그랬다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당연히 이 영화의 섹스신은 선정적이고 적나라할 것이다.
얼마 전 고효주라는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인터넷에서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원래부터 국내 롱보드 마니아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1분짜리 동영상이 그 익숙한 세계의 담을 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그 결과물은 매혹적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극장에서 돈을 주고 본 영화들 중 고효주씨가 무료로 올린 이 1분짜리 영상만큼의 가치에도 도달하지 못한 작품은 수두룩하다.
영화를 보다보면 과연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의 완성도가 그렇게까지 높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하지만 섹스신에 이르는 위태로운 계단이라고 해도 스토리와 주제가 완전히 날아가는 건 아니다. 의사 레즈비언 영화라고는 했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진짜로 감독과 배우의 관계가 발전하기 때문에 [수상한 언니들]은 엉겁결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한국 레즈비언 영화'라는 희귀종이 되었다.
'해어화'의 갈등구조와 교훈은 지나치게 익숙하다. 여자들의 우정은 믿을 수가 없고, 남자들은 모든 여자들의 긍정적인 관계를 질투와 증오로 바꾸어놓는다. 여기엔 다른 예술가의 재능을 질투하는 예술가에 대한 '아마데우스'식 주제도 있지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매개체로 여자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 예술가들이 주인공이라면 이건 고려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무언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