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ju

두 번이나 관람한 이 영화에서, 똑같이 설움을 울어낸 장면은 마지막 동주의 독백이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싶은 것이, 시인이 되고 싶은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두 손 앞의 종이를 마음처럼 찢어내는 그 장면은 내 가슴도 비틀어 찢었다. 얼떨결에 얻은 PD란 이름 앞에, '해직'이란 이름까지 추가로 붙은 이후로는 만들게 되는 것들이 달라졌다. 공정하지 못한 언론에 대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해 무언가를 만들고 말할 일이 많아졌다.
한 달 만에 해외 로케이션 없이 국내에서만 촬영된 이 영화 역시 인물에 주 포커스를 맞춰 배우의 연기력에 온전히 기댄다. 흑백사진 몇 장으로 남아있는 윤동주의 얼굴을 흑백필름으로 그대로 살려내며 실재감을 부여한다. 이준익의 말처럼 '꿩먹고 알먹고'다. 제작비를 대폭 절감한 것은 물론 우리 기억 속 순백의 시인을 자연스럽게 스크린 위로 데려올 수 있었다. '사도'와 '동주'가 같은 시기 시나리오가 작성돼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똑같은 구조를 가지게 됐다는데, 형식뿐만 아니라 기법 면에서도 두 영화는 상당히 닮아 있다.
"한 집에서 같은 해 같이 태어나고 자란 고종사촌 송몽규와의 건강한 우정과 경쟁을 그린다. 두 사람의 '브로맨스'가 주가 된다. 윤동주에게 세 번의 열등감을 느끼게 한 송몽규와의 관계성 안에서 시나리오를 썼고 이를 위해 몇 개의 시를 매치시키기도 했다. 윤동주의 정체성은 송몽규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선명해진다. 송몽규가 동물적 몽상가요 행동주의자였다면 윤동주는 식물적 몽상가로 관념주의자였다. 몽규가 없었으면 동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주를 만든 사람은 몽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