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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는 살인마.” 그것이 문구였다. 영국 살던 시절 동네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대절해 런던에 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반전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다. 당시 9살 정도 먹은 친구 아들은 “블레어는 살인마”라는 팻말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정말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그들이 회사로부터 당한 부당한 대우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면을 쓰고
"헌재가 탄핵심판을 기각하면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했다."
'촛불'은 혁명 맞다. 하지만 생각 없이 혁명을 말하며 기분 내는 것은 촛불혁명의 성공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자랑하는 촛불항쟁의 평화로운 성격은 고전적 혁명론에 어긋나는 특성이며, 대통령 파면과 정권교체가 기존 헌정질서의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촛불'이 87년체제의 수호요 재작동이지 혁명일 수 없다는 주장도 학자들로부터 제기된 바 있다.
자산격차나 소득격차에서 한국은 미국 다음의 세계 최대 불평등 국가가 되었다. 한국은 상위 10%가 소득의 47%를 가진 나라, 상위 1%가 전국 토지의 반을 차지한 나라가 되었다. 비정규직 고용의 일반화, 청년실업, 30~40대 대도시 거주자의 주거 빈곤의 상당 부분은 모두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사항을 따른 결과였다. 게다가 한국은 청소년의 반이 부모의 능력이 자신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신세습사회가 되었다.
이쯤 되니 한국 수구의 '안보 장사'에 어지간히 면역이 된 내게도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한국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오랜만에 포털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거기엔 북한 핵도, 김정은과 트럼프의 막말도, 전쟁 위기도 없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류현진 등판 일정"이었고, 어떤 여배우의 셋째 임신 소식이 검색어 2위에 걸려 있었다. 검색어 10위 안에 북핵이나 한반도 위기 관련 보도는 없었다.
사랑하는 딸! 너도 알다시피 엄마 아빠는 80년 5월에 결혼했다. 한때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아빠는 당시 복학생이었고, 엄마는 신문사 기자였지. 당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뒤 군부가 지배하는 계엄 상태였지만, 그래도 민주화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존재했었다. 언론계에서도 박정희 정권 아래서 짓눌려온 언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벌어지고 있었지. 그러나 전두환의 쿠데타는 그 모든 희망을 완전히 짓뭉갰다. 민주화를 주창하던 사람들은 감옥으로 끌려갔고, 언론자유를 부르짖던 많은 선후배들과 함께 엄마도 강제해직됐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민주주의 및 시민권력 확인료^^ 입금 완료!” “치킨값 대신 후원료” “송금완료…돈 벌어서 뭐하나. 이런 데 써야지”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1억원의 빚을 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해 10월 29일, 청계광장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이 촛불집회는 계속됐다. 첫 촛불집회에서는 광장에 나온 많은 시민들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지난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처음 시작된 촛불집회. 11월 12일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다 인원인 100만 명이 광장이 모였고, 그 인원은 줄어들지 않고 매 주 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