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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함께 숨진 차지철 경호실장의 딸이 국가유공자의 가족으로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국적 포기를 이유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이규훈 판사는 미국 국적자인 딸 차모씨가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박근혜 대통령의 엄마인 육영수 여사님이 1974년 8월 15일에 암살되지 않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학업을 중단할 필요가 없이 계속해서 공부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엄마의 죽음을 기화로 하여 접근하였던 최태민 목사나 나아가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하고도 얽힐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면 육영수 여사님의 소망대로 공부를 마치고(학부를 마친 다음에 유학을 간 것이니 석사와 박사과정을 하였을 것이니 최소한 4-5년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배필을 골라 결혼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계속 퍼스트 레이디 역을 하셨을 터이니 정치에 들어오고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드디어 30% 아래로 내려갔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정권의 대안세력이 되어야 할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 선거는 좀처럼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이른바 박심(朴心)이 뒤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주영 의원이 떨어지고 유승민 의원이 당선된 것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 같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주자들 간의 토론회에서의 난장판은 빈축을 샀고, 특히 투표 개시일을 하루 앞두고 경선 규칙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논란까지 벌어진 형편이다. 이렇게 무관심과 비웃음 속에서 진행되는 제1야당의 당 대표 선거를 보다 보니까 국민들의 열광적인 관심 속에 진행되었던 박근혜 대통령 부친 시절의 마지막 제1야당 당 대표 선거 이야기가 떠올라서 안타까운 마음에 한 번 끄적여 보았다.
1979년 10월 26일 독재자 박정희에게 총을 겨눠 그를 죽인 김재규는 민주투사가 아니라 박정희의 입김이 곳곳에 서린 보살핌을 받아가며 출세길을 달려 왔고 그 직전까지 박정희 독재를 유지하고 반대자를 제거하는 공작에 열심이었던 독재자의 진돗개, 아니 충견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김재규를 속된 말로 빡치게해 박정희를 살해하기에 이르게 한 원인은 잘 알려졌듯이 당시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갈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