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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서점에서 이리저리 책 구경을 하다가 별 생각 없이 집어 든 책이 '보물'과도 같은 책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기본 욕구인 '채집'과 '사냥'의 즐거움은 오프라인이 아니고서는 맛보기 힘들다. 공부를 하거나 추천을 받아서 알게 되는 좋은 책도 물론 독서가의 기쁨이지만 우연히 발견하는 좋은 책은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머니는 거친 숨소리와 이따금씩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내셨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셨다.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릿속은 복잡한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몸을 뒤척이셨다. 그 순간 어머니의 생기 없는 입술에서 '엄마!'라는 또렷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의 김운기 작가는 1937년생으로 어머니와 동갑이다. 나는 당신의 딸에게서도 듣지 못한 외할머니의 추억을 그의 사진으로 본다.
세 군데의 미용실 중에서 유일하게 보조 미용사를 보유한 장점을 살려 본격적으로 커트를 하기 전 세팅 작업에만 5분이 소요되었다. 원장 아주머니도 심상치 않았다. 어른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헤어스타일이 바뀐 적이 없는 나를 두고 어떤 스타일로 자를 것인지, 구레나룻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뒤통수 머리는 얼마만큼 길게 자를 것인지에 관한 매우 세부적인 오더를 내려주기를 요구했다. 물론 나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적당히 잘라주세요."
서재는 사색과 휴식의 장소다. 잘 계획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규칙이 필요하다. 계획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책만 잔뜩 쌓아놓으면 '책 창고'이지 '서재'가 아니다. 정원을 관리하듯이 서재도 물을 뿌리고, 불필요한 가지는 잘라내고, 거름을 줘야 한다. 서재를 방문한 사람이 "이 책을 다 읽어셨어요?" 라는 질문을 했을 때 , 미국의 성직자 '토머스 웬트워스 허기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침대도 독서하기에 쾌적한 장소다. 잠들기 전 침대는 화장실과 더불어 독서하기에 집중이 잘 되는 장소다. 고대 로마의 상류계급 저택에 있던 호화스러운 침대의 가장 중요한 용도 2가지는 '식사'와 '독서'였던 사실을 아는가? 침대위의 독서가 더욱 쾌적한 이유는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꿈을 꾼다면 그 꿈이 악몽이기는 어렵다.
그는 남들이 찍지 못하는 사진을 추구하지 않는다. 누구나 보아왔고,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시골의 장면을 찍을 뿐이다. 남들이 가질 수 없는 사진을 가지기 위해서 해외여행도 불사하는 세상이지만 그는 그가 사는 곳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오히려 특별하고 우리 모두의 추억을 되새겨 주는 마력을 가진다.
사진가 원덕희의 포토에세이<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는 한국의 사진계에서 매우 특별하면서도 소중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사진은 과시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어설픈 감동도 줄 생각도 없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농촌의 풍경은 우리네 모두의 고향의 모습이고, 사진 속의 어르신들은 우리들 모두의 부모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운 것은' 모두 '원덕희 작가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작가가 아닌 농부의 시각으로 담은 그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진으로 나의 추억을 되새겨보았다.
주말마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가급적 찾아뵙는다. 그때마다 뭔가 간식거리를 사 가는데 매번 뭘 사갈까 잠시 고민을 하게 된다. 어머니께서는 나의 군 생활 27개월을 통틀어 훈련소 퇴소식 때 단 한 번 면회를 오셨다.
아내가 가끔 내 서재에 들어와 읽을 책을 골라가기라도 하면 갑자기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내와 내가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함께 아름다운 여행지를 여행한 것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이제는 중학생이 된 내 딸아이가 어제 나의 서재를 방문해서 이 책 저 책을 구경했는데 몇 가지 구미가 당긴 책을 발견한 모양이다. 중간고사가 마치면 꼭 읽고 싶단다. 아니 읽겠다고 한다. 딸아이와 좋은 책을 공유하고 그 경험을 나누게 될 텐데 나는 비로소 내가 평생 모아온 책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뿌듯함을 처음 느꼈다.
셋째, 환자복이 아닌 평상복으로 생활하는 곳이 좋다. 환자복은 당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실 순간까지 '환자'의 상태로 남기지만 평상복은 단지 몸이 불편한 '어르신'으로 인식한다는 장점이 있다. 건강한 사람은 모르겠지만 환자복을 입는 것과 평상복을 입는 것은 본인 스스로 느끼기에도 큰 차이가 있다. 요양원 측에서도 환자복을 입히기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한데 굳이 불편한 평상복을 입힌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의 부모의 삶의 질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