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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제목'에 끌려 책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계발서적에 독자의 이목을 끄는 '요상한' 제목이 많은데 제목보다는 내용을 요모조모 따져보는 것이 좋겠다.
2014년 상반기에 나온 9월호로 처음 알게 된 <근대서지>는 놀랍고 신기했다. 미친듯이 <근대서지>과월호를 구하겠다고 사방팔방으로 기웃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매호마다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풍성하면서도 장정이나 디자인이 굉장히 세련되어 있어서 평생을 곁에 두고 소장하며 읽을 만한 가치가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근대서지>의 독자가 되기 어렵지 일단 이 잡지의 존재를 알게 되면 전 권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독서가라면 드는 게 당연하다.
너희 엄마가 언제부터 너를 '언제나 1순위'라는 이름으로 전화번호를 입력해놨는지 모르겠다만 나야말로 너를 '언제나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단다. 증거를 대보라고? 1년 동안 페북에서의 활동을 요약 정리해주는 'My times'라는 어플이 있어서 실행시켜 보았는데 너도 보다시피 내가 1년 동안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 1위가 '딸아이는'이고 2위가 '딸아이의' 그 뒤를 이어 3위가 '딸아이가'이구나. 너희 엄마는 쪼잔하게 너를 달랑 1순위에만 두고 있다지만 아빠는 너를 1순위에서 3순위까지 차트 줄 세우기를 했단다. 너의 엄마는 네가 그저 '알파'일 뿐이지만 아빠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의 존재다.
강운구 작가는 70년대에 <마을 삼부작>을 촬영했고 삼십년이 지난 이천년대에 같은 정확히 같은 위치에서, 같은 카메라와 렌즈로 다시 담기를 원했다. 강운구의 사진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이유로 후배 사진작가인 권태균 작가가 그 소임을 맡기로 했다고 한다. 강운구 작가는 또다시 30년이 지난 뒤에도 권태균 작가의 뒤를 이어 후배 사진작가가 그때는 여든 몇 살이 될 권태균 작가의 안내를 받아 세 마을을 촬영하기를 염원했다. 2015년 새해 벽두, 한국의 사진 계에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와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중견사진작가 권태균의 부고였다.
인근에서 최연소 상여 소리꾼에 취임한 그는 그로부터 근 50년간 무수한 망자를 구성진 목소리로 달래 저승길로 데려다 주었다. 불행하게도 김 아무개 씨가 반백년 동안 상여 소리꾼 노릇을 할 때 그 자리를 탐내는 젊은이가 전혀 없었고, 김 아무개 씨의 아들은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에 타동네에서 소리꾼을 초빙할 여유가 없었다. 김 아무개 씨가 망자들과 함께 거닌 마을 골목골목을 거쳐서 마침 내 장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승길을 위로한 것은 상여 귀퉁이에 매달린 일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녹음 소리였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책읽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클럽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클럽이 있지만 <페친의 책장>을 추천한다. 다른 사람의 책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독서가들에게 은밀한 또다른 취미생활이다. 즐겁고 또 즐겁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책장을 많이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읽고 싶은 책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렇게 해서 장만한 책은 실패의 확률이 의외로 낮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재의 주인들의 직업은 다양하고 평범하다. 국어교사, 번역가, 대학생, 기자, 판소리 고수, 회사원, 바리스타, 도서관지기 등 거의 대부분 유명인사라기보다는 실질적인 책의 소비자이자 생활 독서가에 가깝다. 근사하고 광활한 서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런 저런 온갖 비상수단을 발휘해서 책을 모으고 소장한다.
필자가 2011년에 낸 <오래된 새 책>은 절판본과 희귀본 책을 소개하고 또 그들을 수집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책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아이러니컬한 경우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즉 절판본과 희귀본을 다룬 책 자신이 '절판본'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오래된 새 책>은 전자책으로는 출간이 되지 않았고, 어지간한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니고서야 상당수가 절판이 되는 국내 출판업계의 사정을 고려하면 결말은 예정되어 있다.
개 두 마리가 죄 없는 선량한 사람을 잡아먹을 기세로 조여오는데도 구조하러 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개 두 마리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끝에 요양원의 자동문에 도착했다. 미친 듯이 팔을 흔들고 두드림으로써 자동문이 열리길 고대했다. 그러나 그 자동문은 성곽의 문보다 더 굳건히 닫혀 있었다. 나는 자동문이라는 것이 아무 때나 자동이 아니고 자동문이 되고 싶을 때만 자동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문학을 지망하긴 했으나 재능은 타고나지 못한 그는 꾸준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하고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명문장을 써낸 장본인이 되었다. 재능은 싸구려이며 중요한 것은 훈련이라는 말의 훌륭한 예가 바로 윤태영이다. 그런 그가 '실용적이고 당장 처방이 가능한 글쓰기 비법'을 소유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글쓰기 강좌는 지켜야 할 수칙도, 사례도 구체적이다. 김훈이나 김승옥의 소설에서 예문을 구해오기도 했지만 예문의 대부분은 그가 정치 글쟁이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글쓰기 실무의 경험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