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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김상조는 야당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해야 하고, 김이수의 경우는 국회 표결 결과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인사청문의 성격이 다른 데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다. 앞의 두 명은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데 장애물이 없다. 이들에 대한 청문은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그 적격성을 판단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는 기능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되, 그 판단에는 구속되지 않는 것이다. 이게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통치원리다. 하지만 김이수 후보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당이 딴죽을 거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지만 쿨하게 넘어가야 한다. 참아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당의 존재감 때문이다. 찬성해주면 민주당 2중대란 소리를 들으니 아무리 좋은 후보라도 몇 명은 낙마시키고 싶은 거다. 이런 국민의당에게 자존심을 내세우면 안 된다. 미국 대통령처럼 문대통령도 수시로 국민의당 핵심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구하시라. 자주 연락하면 절대로 함부로 못한다. 국민의당의 협조 없이 국회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 적어도 앞으로 3년은 국민의당과 사실상 연정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잘못된 대통령을 만나면 상대적으로 말 안 듣는 검찰보단 싹싹하고 눈치 빠른 경찰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에서 경찰공화국이 되는 것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도대체 이런 우려를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지금의 검찰보다 더 중립적인, 아니 적어도 검찰 정도의 수사 독립성을 확보할 것인지,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형법 제92조의 6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사생활 중 가장 내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불 속 행위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현대문명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국가폭력입니다. 이 규정은 국가가 성생활의 체위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군형법 제96조의 6은 폐지하거나 개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유엔의 인권기구(UN Human Rights Committee)마저 대한민국 정부에 강력히 권고한 것입니다.
경찰로선 치욕스럽다고 하는 이런 검경관계가 왜 지난 70여 년 동안 형성되어 왔을까? 왜 경찰은 수사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하고, 독자적인 강제수사권마저 없을까? 이제껏 이에 대한 설명으로 제일 각광받은 것은 '인권보호'였다. 즉, 경찰은 검찰에 비해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예 가혹수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선,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이를 지휘감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 치하에서 경찰로부터 인권침해를 받은 우리 국민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이런 경험이 제헌 헌법을 만드는 과정과 그 이후 형소법을 만드는 과정에 반영되어 경찰의 수사권을 검찰의 통제 하에 두었던 것이다.
검찰개혁 과제 중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법무부 문민화다. 정부 수립 이후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법무행정을 담당하는 법무부는 검사들이 지배해 왔다. 과거엔 차관 이하 실국장을 모두 검사들이 차지했고, 지금도 교정본부장을 제외하곤 법무부의 모든 요직을 검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 지위에 있을 뿐인데도, 차관급 대우를 받는 검사장 자리를 50여 개나 만들어 이들이 검찰을 넘어 법무부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이 아니다. 그러면 검사들이 지배하는 법무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몇 가지를 지적해 보자.
일반 시민이 검찰인사에서 이해 못하는 게 기수문화다. 뒷 기수 검사가 앞 기수인 선배 검사를 추월해 승진하면 선배들이 옷을 벗는다는 이 문화는 다른 나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문제적 상황이다. 이 문화는 젊은 나이의 유능한 검사들로 하여금, 타의에 의해 검찰을 나와 변호사를 개업해, 치욕스런 전관예우의 폐해를 만들어 낸 원인이기도 하다. 군대도 아닌 검찰에서 왜 이런 문화가 생겼을까.
원래 진짜 보수는 사상사적으로 자유주의와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라는 사상적 기초가 없으면 그날로 무너지는 경제체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며 개인의 삶에서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을 핵심이념으로 한다. 그런데 가짜 보수의 이념은 이것과는 무관하다. 아니 놀랍게도 자유주의와는 180도 다른 전체주의를 주장한다. 블랙리스트를 보라.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배제하겠다는 것 아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보라. 자신들이 생각하는 국가관만을 국민들에게 주입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의 이면엔 일자리 감소라는 고용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정부가 이런 산업을 육성하면 할수록 일자리는 없어져 결국 심각한 고용문제를 야기할지 모른다. 작년 다보스 포럼에서도 향후 5년간 선진국 및 신흥시장 15개국에서 일자리 710만 개가 사라질 거라고 내다보았다. 대통령 후보라면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지금 세계적 추세라면, 정부가 앞장서지 않아도 자연스레 도래할 것이다. 대통령이 끌고 간다고 해서 빨리 오는 게 아니다. 정부가 걱정해야 할 것은, 그 빠른 도래를 위해 앞장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도래 뒤의 후과다. 대통령 후보들은 이 후과에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이들은 '성공적인 장관의 특징'을 연구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이 성공적인 장관으로 일하긴 어렵다. 이제껏 얼마나 많은 교수들이 각 정권에서 일했는가. 그 중에서 성공적인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는가. 멀리 볼 것도 없이 지난 몇 년간의 박근혜 정권을 보라. 상당수의 장차관이 교수출신이었다. 그들에 대한 평가가 어떤가? 문형표, 김종덕, 안종범, 김종... 모두 감옥에 있다. 이게 교수들의 성적표다.
아무리 언성을 높여가며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답은 판에 박힌 것뿐이다. 사실관계를 추궁하려면 가급적 짧게 질문하고 상대의 답변을 명확하게 구하라. 어차피 진실게임을 하는 것인데 상대를 확실하게 몰아야지 도망갈 구멍을 넓게 열어주면 안 된다. 국회의원 상당수의 질문이 저게 사실을 캐는 질문인지 그저 의견을 구하는 질문인지 알 수가 없다. 질문의 목표를 세우고 제발 연습 좀 하고 나와라.
대통령에 지지에 대한 여론조사가 나왔다. 5%! 현 시대 세계 어느 지도자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경이적 지지도다. 이제 국민이 확실히 대통령을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대통령은 사임(하야란 말을 쓰지 않겠다. 용어 자체가 봉건적이기 때문이다)해야 한다. 그 길밖엔 없다. 박대통령이 정녕 조금이라도 국민들로부터 동정을 받고, 퇴임 이후 선처를 받길 원한다면, 사임 절차에서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이 보여줄 처음이자 마지막 애국심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젠 외국에 나가지 마시라. 5% 지지 받는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외국 정상들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대통령의 하야를 전제로 한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해야 한다. 거국중립내각은 선거 및 개헌 관리내각이어야 하고 총리는 이런 임무에 충실할 사람으로 임명되어야 한다. 이 내각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총리 후보자는 (청문 과정 등을 통해) 향후 정치일정을 발표해야 한다. 이러한 일정에 여야가 동의해 총리 임명동의를 받으면 그 일정에 맞추어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 개헌은 국회가 중심이 되어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붙이되, 그 일정은 내년 3월 전후, 하야는 그 직후, 대선은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하면 될 것이다. 이런 일정으로 나가면 현 사태는 내년 상반기 이내로 정리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으리라 본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즉 국민은 헌법에 따라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에게 헌법적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주권자인 우리 국민은 박근혜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그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준 것이지, 결코 제3자로서 헌법상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않은 최순실이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게 아닙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헌법적 근거 없이 타인의 감독 하에 두거나 간섭을 허용하였다면, 그것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권재민원리(헌법 제1조2항)와 대통령선거제도(헌법 제67조)를 실질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헌법위반입니다.
소송법적 용어 중에 청구인낙(請求認諾)이라는 말이 있다. 피고가 원고의 청구를 다투지 않고 인정하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소송은 종료된다. 어차피 질 사건에서는 피고가 백기를 드는 것이 소송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다. 지금 거대한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름 하여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다. 원고는 언론과 야당, 피고는 최순실과 현 정권(대통령), 재판부는 주권자인 국민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개헌논의는 다른 중차대한 문제를 가리는 블랙홀이 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겐 개헌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 질서를 세워야 한다. 개헌은 그것을 제대로 한 후 의도를 의심받지 않는 정권이 해야 한다. 내년이면 자연스레 개헌 문제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토론에 들어가게 된다. 대선후보자들이 다들 거기에 대한 복안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선거공약으로 개헌에 관한 방안을 내놓고, 선거를 치른 다음, 당선된 새 대통령이 임기 중 개헌을 하는 게 순리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러셀이 나이 아흔이 넘어 쓴 '러셀 자서전'의 서문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이 말을 듣고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살아보아야 할 것이다. 금세기 미국의 지성이자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가 있는 미국 MIT 연구실에도 러셀의 이 말이 붙어 있다고 한다. 촘스키는 말한다. 러셀의 세 가지 열정은 바로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사드 배치는 성주 주민들의 문제지 다른 지역 사람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고약한 흐름인데, 사드 배치를 마치 동네에 쓰레기장이 들어오는 문제로 보자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그것과 관계없는 성주 외 지역 사람들이 반대하면 무슨 나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이것은 사드 배치 반대를 님비현상이자 국가안보를 등한시 하는 비애국적 행동으로 몰아갈 수 있는 논리다.
국정원이 이들의 안전과 보호를 명분으로 법정에 보내지 않겠다고 하니 수상하기 그지없다. 지난 4월 입국할 때는 언론에 공개해 사진까지 찍히도록 했음에도 지금에 와서는 법적 절차에도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욱 공개법정도 아니고 비공개 법정에서 심문하겠다는 것을 거부한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언필칭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어떤 형태든 불법구금의 의혹이 있으면 법원은 그 당사자들을 직접 불러 그 적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게 우리 헌법과 관련 법률이 요구하는 적법절차다. 인신보호법은 바로 이를 위해 만들어진 문명국가의 자존심이다. 이런 것을 못하면 대한민국을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라 부를 수 없다.
문제는 이번처럼 대통령이 국회의원 임기 종료 직전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임기 중의 국회가 재의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이다. 이에 대해 여권은 헌법 제51조에 따라 이 국회법 개정 법률안은 폐기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만일 그렇게 해석하면, 국회의 재의권한이라는 헌법상 권한을 대통령이 고의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헌법 스스로 열어 놓았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권력분립의 원칙을 통치원리로 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해석상 용인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