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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박근혜 때 아무말 하지 못하고 조용히 숨죽여 지내던 성소수자들이 문재인이 대통령 되려니까 나대고 있다"고 말한 이들이. 그리고 그 말에 동조한 많은 이들이 '그곳'에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성소수자 동지들이 언제나 '그곳'에서 연대했던 것은 똑똑히 안다. 당신들의 지레짐작과는 다르게 이 사회에 곳곳에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꼈고, 힘들어하고 절망스러워하던 사람들 주위에는 언제나 성소수자 활동가 동지들이 친구로서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당신이 보지 못했다고 쉽게 그들의 역사를 지우지 마라. 당신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누군가의 존재와 목소리를 깡그리 무시하지 마라.
선거는 표싸움이고, 어쨌든 승리해야 한다는 저질스러운 선거공학을 아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회로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말 표가 걱정됐다면, 동성혼에 대한 제도적 보장을 현행 가족법이 아닌 별도의 법으로 규정할 수도 있었다. 절망적인 것은, 평소에는 그렇게 표를 걱정하며 잘도 '추후에 고려해보겠다', '아직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며 에둘러 표현해왔던 사람들이 이번 건에 대해서는 너무 단호했단 점이다. 이들 후보에게 이 땅을 살고 있는 수많은 동성커플과 성소수자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며 가볍게 무시해도 되는 존재란 것을 너무 버젓이 드러냈다.
아무리 촬영이 허가되었다고 하지만 몰래카메라 장비로 누군가를 찍어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이다. '여자친구' 팬사인회에서 그룹멤버 예린은 안경몰카를 이용해 자신을 찍은 남성 팬을 찾아냈고 회사 측에 이를 알렸다. 이후 그 남성은 자리를 떴다. 예린은 화를 내는 대신 그 남성 팬과의 '손깍지 이벤트'까지 마친 뒤 내보냈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 상황을 두고 예린에게 비난을 가한다. 현장에서 굳이 몰카를 확인해서 해당 남성에게 무안함을 주었다는 이유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가?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버젓이 벌어진다.
[서든어택2]가 여성캐릭터를 벗기고 가슴크기를 한껏 키운 것으로 조롱을 받는 사이, [오버워치]는 새로운 영웅인 '아나'를 발표했다. 아나는 기존 영웅이었던 '파라'의 어머니이자 한쪽 눈을 쓸 수 없는 이집트 출신의 저격수다. 게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노인이자 여성, 그리고 장애를 가진 비백인 캐릭터가 등장했다. 아나는 게임 캐릭터로 등장하기 전부터 [오버워치] 세계관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아나가 이미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아나의 등장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오버워치]와 [서든어택2]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단서다.
누군가는 '혐오는 지능의 문제'라고 한탄하며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진 않았다. 나는 혐오는 다분히 공감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차별받는 타인의 지금의 삶, 어떤 혐오받는 사람이 겪어왔을 아득한 고통의 무게, 나는 그런 것들을 헤아릴 수 있어야 혐오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경험을 할 수 없고 대신 내 어떤 경험에 비추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볼 뿐이다. '누군가가 차별받고 있더라'는 선언의 텍스트를 접한 사람보다는 내가 약자였을 때 느꼈을 기분을 지금 그 사람에게 대입해 그 사람이 겪는 차별과 혐오를 어렴풋하게 이해해 본 사람이 더 쉽게 혐오를 벗어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영광을 재건하겠다던 딸의 포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게 힘들어 아우성쳤다. 어떤 사람은 생존의 끄트머리에 내몰려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딸은 비명소리를 치우기 위해 아버지의 방법을 꺼내 들었다. 10만이 넘는 인파가 청와대 근처에 모여 살려달라고 소리친 날, 대통령은 없었다. 공권력이 쏘아댄 물대포에 맞아 사람 하나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어느 날 대통령은 돌아와 그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테러리스트라고 말했다.
PD수첩은 이제 어떤 이에게는 면죄부가 됐다. 아버지의 짐을 고스란히 이어받아서 고달픈 '한국 남성'의 삶을 스스로 연민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힘듦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이해해줄 생각이 없는 '한국 여성'들을 조금 더 맘 편히 비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는 동안 오늘도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같은 차별을 겪어야 한다.
며칠 전 강용석 씨는 JTBC 프로그램 <썰전>에서 미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합헌을 결정한 사건에 대해 그런 말을 하셨지요. "가족의 중요한 역할은 재생산이다. 자식을 낳아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인데 동성 부부는 생물학적으로 재생산이 불가하다." 어쩌면 저는 치사하게도 이번 이야기를 제 성 소수자 친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당사자가 된 것이지요. 저는 일찍이 결혼을 단념했습니다. 출산은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혼자 사는 집이 외로워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살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양이를 키울 생각을 하자마자 밀린 학자금 대출금, 매달 나가는 월세, 전기세, 공과금. 그리고 차비와 식비 등 생활비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생각보다 높은 수위의 발언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이들이 여성혐오자들과 똑같이 응수한다고 우려했다. 여성들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갤러'들은 진지하기보다는 유쾌했다. 살면서 한번쯤 들어왔던 말들을 뒤집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광대가 양반을 놀려대는 것'을 혐오라 할 수 없듯이 차별받아온 그 사람들이 차별 발언의 주체를 '놀려댄다'고 해서 이걸 곧바로 혐오라고 할 수 없다. 이건 희화이며 풍자에 가깝다. 개그콘서트에서 여성이나 장애인을 놀리면 문제가 돼야 하지만 정치인을 놀리면 풍자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6월 13일로 계획돼 있던 퀴어 퍼레이드 일정이 28일로 미뤄졌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들이 행사가 예정된 대학로 부근에 집회신고를 먼저 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로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퀴어 퍼레이드는 '금지 통고' 되었다. 퀴어 퍼레이드 개최에 난항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는 스스로 성소수자들에게 '천국의 자격'을 부여했다. 예수가 진노했던 제사장의 모습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