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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혁명 맞다. 하지만 생각 없이 혁명을 말하며 기분 내는 것은 촛불혁명의 성공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자랑하는 촛불항쟁의 평화로운 성격은 고전적 혁명론에 어긋나는 특성이며, 대통령 파면과 정권교체가 기존 헌정질서의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촛불'이 87년체제의 수호요 재작동이지 혁명일 수 없다는 주장도 학자들로부터 제기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지가 막막한 때일수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일이다. 특히 낡은 언어를 극구 피해갈 줄 알아야 한다. '독자적 핵무장'이니 '전술핵 재배치'뿐 아니라 '북을 대화로 끌어내는 더욱 강력한 제재와 압박'도 낡아빠진 언어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통일만이 살길이다'는 익숙한 옛 노래를 다시 불러도 곤란하다. 그렇다고 '이제 통일은 잊어버리고 남북이 이웃나라로 평화롭게 살자'는 주장도 새로울 것 없는 공리공론이다. 이 땅은 무작정 통일을 부르짖는다고 통일이 되고 평화가 오는 곳도 아니려니와, 점진적·단계적 과정으로서의 통일마저 외면한 채 두 나라의 항구적 평화공존을 주장한다고 평화가 달성되는 지역도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두번은 시위에 놀란 박근혜씨가 진정성이 결여된 사과나마 연거푸 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전혀 넘어가지 않고 11월 12일의 3차 촛불대행진을 통해 퇴진판결을 (말하자면 3심에서) 확정하자, 도리어 정면 불복의 길을 택했다. 주권자에 맞선 '내란' 수준의 저항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19일의 4차 집회는 따라서 종전의 국정농단·부정비리에 대한 단죄에서 '내란진압' 작업으로 옮겨갔다고 말할 수 있다. 26일의 집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건 간에 실질적 '내란죄'에 대한 국민적 소추(訴追)를 확인할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후의 응징작업은 집회인원이 불고 줄고를 떠나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즐겁고 질기게 진행될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결정적으로 패한 이후 선거마다 거의 연전연패하면서 야당은 재집권 노력보다 원내 제2당의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는 습성이 생겼습니다. 87년체제 말기국면 특유의 이런 현상이 곧 한국판 양당 기득권구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수구세력은 제1야당에 나눠주는 먹이조차 점점 더 아까워지고 선거 때마다 표를 얻어야 하는 일이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에 아예 87년체제를 자기들 식으로 끝내려는 작업을 속속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임기연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87년 6월항쟁의 최대 열매 가운데 하나인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최근 몇년간 착실히 축소되어왔다. 2012년 선거에서의 대대적인 관권개입과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대부분 흐지부지되었고, 수사기관의 독립성, 관료조직의 중립성, 언론의 공정성 등 재발방지 장치들이 하나같이 멸종위기에 놓였다. 시민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의사를 직접 표시할 기회는 극도로 억압되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50년 간 자리를 지킨 창작과비평 편집인에서 물러났다. 그는 11월 2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비 문학상 통합시상식에서 신경숙의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에 대해 다음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반세기 가까이 이끌어온 계간 <창작과비평>(창비)의 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난다. 창비는 오는 25일 오후 한국언론회관에서 여는 백석문학상과 신동엽문학상, 창비신인문학상, 사회인문학평론상에 대한
10월 초 창비 부설 세교연구소 임원급의 문학비평가와 며칠 여행을 같이 하게 됐던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창비 핵심으로부터 그 비평가에게 창비와 백낙청을 옹호하라는 '오더'가 수차례 떨어졌다고 한다. 놀랄 일 아닌가? 아마도 그에게만 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비의 창비스러움은 처음엔 백낙청 개인의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불거졌지만, 이젠 그 개인을 넘어 창비라는 조직이나 진영의 신뢰와 관계된 문제가 되었다. 작가는 사과하고 뒤로 물러났는데, 정작 창비는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조직을 지키라는 지침을 보냄으로써 소위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조직원으로 여기고 있음이 드러났다.
아무리 대외적으로는 진보와 민주와 평화를 논의하고 표방한들, 자신이 직접 동원하고 광고하고 형성한, 그래서 직접 자기 자신과 관계된 권력과 자본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실성과 성실성을 보일 수 없다면, 그 집단의 지식과 문학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대표 지식인 그룹이라 자처하는 집단이 자신과 관계된 공적인 문제에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대외적으로만 진보적인 의제를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많은 부패한 지식-권력의 복합체일 것이다. 나쁜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는 자가 꼭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주제를 내세우거나 지지하는 사람이나 조직이더라도, 실제로는 얼마든지 폭력적이거나 기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백낙청이 정점에 있는 창비 시스템이 바로 그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실망하는 것이다.
백낙청 '창작과 비평' 편집인이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요약하면 '표절로 단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백 편집인은 27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창비의 입장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