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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수도 프라하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단연 비셰흐라드 공원묘지였다. 묘지라는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저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의 공원이라 여겼다. ‘고지대의 성’이라는 뜻을 가진 비셰흐라드 언덕은 야경과 석양을
100미터 남짓한 이 아담한 거리에 유태인을 추모하는 황동판이 무려 36개나 심어져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이 아름답고 평온한 거리가 아우슈비츠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일상에 불현듯 틈입한 역사에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매일 집 앞에서 아우슈비츠를 만나야 하는 독일인의 심정이 궁금해 한 중년 여성에게 걸림돌이 주는 심리적 부담감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마땅히 짊어져야 할 부담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와 만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해마다 1월27일이면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는 1945년 이날 소련군이 수용소를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피 흘리며 진군한 연합군이 극악한 나치의 손아귀에서 아직 독가스실로 보내지지 않은
독일 나치 정권이 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에서 가동한 아우슈비츠 강제 집단수용소의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지금은 94세의 노인이 된 과거 나치 친위대원(SS)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독일 서부 데트몰트에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진 인종청소에 가담한 혐의로 법정에 선 전직 나치 친위대(SS) 대원이 72년 만에 자신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29일(현지시간) AFP통신과 dpa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페이스북 팔로우하기 | 허핑턴포스트에 문의하기 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IT Giornata della memoria. Quel viaggio di dolore dal Binario 21 ai campi di sterminio
모두가 아는 사실은, 2차대전 중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샤워실처럼 생긴 가스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름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방문한 사람들은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과 마주했다. 박물관
<투 라이프>에는 아우슈비츠의 고통이 야단스럽게 펼쳐지진 않는다. 단지 엘렌이 아우슈비츠에서 생체실험을 당해 생식능력을 잃은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인 것, 로즈의 남편이 아우슈비츠의 악몽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밤마다 비명을 지른다는 것 등을 통해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불행의 극한을 체험한 엘렌, 릴리, 로즈의 몸과 마음에도 아우슈비츠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녀들은 그 상처에 매몰되지 않는다.
"선은 절대 분노로부터 오지 않는다. 호의는 언제나 분노를 이긴다." 이것은 81세의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에바 모제스 쾨르가 나치 전범인 아우슈비츠 경비원 오스카 그뢰닝에게 키스를 받은 뒤 한 말이다. 오스카 그뢰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