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할머니의 추억 | 서울의 집주인들을 생각하다

겨울 어느 날이었다. 하수도가 역류해서 넘치려고 했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옆집이 올라가서 이야기하고, 사람을 불러서 고쳐달라고 해도 주인집 할머니는 듣지 않았다. 자기랑 거래하는 집수리 아저씨가 오늘은 오지 못한단다. 그래서 오늘은 안된단다. 물론 옆집에 사는 사람들과 전투력을 합세했다. 결론은 그럼 너희들이 불러라였다. 모두 씻고 나가야 했고 하수가 역류하는 상태로 집을 나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하수도 뚫음'이라고 쓰여 있는 찌라시를 보고 전화를 했다.

2015-07-29     윤현위
ⓒgettyimagesbank

우리는 이틀 전에 계약한 집에 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집에 들어갔다. 전에 살던 반지하는 반지하지만 한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주인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여름에 따습고 겨울에 시원한 집이었다. 장마 때 내린 비가 방에 스며들어 머리맡을 적셨을 때, 이 집에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구한 집은 대지도 높았고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첫 만남을 하고 바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계약을 하고 보증금은 들어오는 날 드리겠노라했다. 그러자고 했다. 주인 할머니는 보증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열쇠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이 말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삿짐을 싸서 집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은 반지하에 네 집, 위에 두 집은 전세, 윗층은 주인집이다. 할머니 혼자 사셨는데 말을 하든 전화를 하든 주인집이란 표현을 썼다. 집은 정말이지 반지하 치고는 괜찮았다. 반지하의 관건은 아까 이야기한 담장과 창문과의 거리 그리고 환풍기다. 이 두 개가 궁합이 좋아야 곰팡이 폭탄을 면할 수 있다. 환풍기를 끄면 현관문을 타고 계속 물이 흘러나와서 환풍기를 계속 돌려야 했다. 주인집 할머니는 이것이 못마땅해서 틈이 날 때마다 전기를 아껴야 한다고 사람이 없을 땐 환풍기를 꺼야 한다고 말했다. 환풍기를 끄면 물이 흐른다고 이야기해도 그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듣기 싫어하는 말은 듣지 않았다.

2009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하수도가 역류해서 넘치려고 했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옆집이 올라가서 이야기하고, 사람을 불러서 고쳐달라고 해도 주인집 할머니는 듣지 않았다. 자기랑 거래하는 집수리 아저씨가 오늘은 오지 못한단다. 그래서 오늘은 안된단다. 물론 옆집에 사는 사람들과 전투력을 합세했다. 결론은 그럼 너희들이 불러라였다. 모두 씻고 나가야 했고 하수가 역류하는 상태로 집을 나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하수도 뚫음'이라고 쓰여 있는 찌라시를 보고 전화를 했다.

꽁초는 나오지 않았다. 옆집에는 긴 머릿결의 여인들이 세 명이 살았다. 그게 쌓여서 막힌 거란다. 모두 씻으러 들어갔다. 밖에 나오는데 아저씨는 가지 않고 주인집 할머니와 계속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요는 가격이었는데 주인집 할머니는 원래 거래하던 아저씨는 5만원인데 왜 7만원이냐는 거다. 아저씨가 부른 가격은 7만원이었다. 그 둘은 몇 십분 동안 서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싸웠다. 주인집 할머니는 만원짜리 다섯장을 흔들면서 씩씩 거렸고 아저씨는 손사래를 쳤다. 내가 다가가서 2만원을 건냈다. 물론 돈이 아까웠지만 그럼 싸움이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덧 삼년이 흘렀다. 갱신한 계약서에 적혀 있는 날짜에 나가겠다고 두 달 전에 말했다. 두 달이 지나도록 방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사할 날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인집 할머니는 원래 방이 나갈 때까지 보증금을 주지 않는 것이 맞는데, 내가 특별히 그 날짜에 맞춰서 주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올라간다. "네 그러세요"

저는 "서울의 집주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려고 합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들의 절반 이상이 임차가구죠.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딱히 책이라는 매체로는 많이 접해보지 못 한 것 같아서 세입자가구를 위한 책을 한번 쓰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사연을 받습니다. 세들어 사는 서러움과 부당함 이런 내용들을 적어서 보내주십시오. 책에는 인적사항이 기재되지 않습니다. 사연을 보내실 때에도 개인정보는 나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리겠습니다. 사연은 geo0322@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