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들은 왜 삼성의 손을 들어줬을까

삼성의 성공한 프레임 전략은 따로 있다. 합병 반대가 무조건 합병 부결처럼 보이게 만들었단 점이다. 엘리엇과 소액주주들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무조건 반대한 게 아니었다. 합병은 찬성하지만 합병 비율이 문제였다. 1대 0.35라는 합병 비율은 누가봐도 불합리했다. 실제로 7월 17일 주총장에서 몇몇 소액 주주가 투표 전 발언을 통해 합병 비율을 재조정해서 합병안을 재상정하자고 요구했다. 삼성 입장에선 아니될 말이었다.

2015-07-23     신기주
ⓒ연합뉴스

뜻밖의 낙승이었다. 주총 직전까지만 해도 투표 결과는 혼전 양상을 띌 걸로 예상됐다. 같은 시각에 열린 제일모직 주주총회에선 합병안이 만장일치 박수로 의결됐다. 주총장에선 간간히 웃음소리까지 터져나왔다. 반면에 삼성물산 주총장에선 고성과 항의가 이어졌다. 합병안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액주주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많은 걸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어느 쪽에 절대적으로 유리한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삼성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싸움터'

게다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분명 삼성물산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이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대 0.35다. 제일모직의 시총이 삼성물산보다 3배 커서 나온 결과다. 반면에 순자산은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6배 가까이 된다. 삼성물산의 순자산은 30조원인데 제일모직의 순자산은 고작 5조원 수준이다. 법대로만 보면 문제될 건 없다. 한국의 상법은 상장법인의 경우 합병 비율은 시가총액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는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간 경우였다. 두 회사 주총장의 분위기가 그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주총 결과 전체 주식의 58.91%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동의한 걸로 나타났다. 삼성이 힘으로 얻은 42%를 제외하면 17% 가량의 주주가 합병에 동의했단 의미다. 확실히 합병에 반대한 주주표는 엘리엇 7.12%, 메이슨캐피탈 2.18%, 외국인과 소액주주 일부까지 더해서 25.82%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 주주들의 다수가 자신들의 금전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합병에 찬성했단 말이다.

싸움의 본질을 바꾼 삼성의 프레임전략

삼성의 성공한 프레임 전략은 따로 있다. 합병 반대가 무조건 합병 부결처럼 보이게 만들었단 점이다. 엘리엇과 소액주주들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무조건 반대한 게 아니었다. 합병은 찬성하지만 합병 비율이 문제였다. 1대 0.35라는 합병 비율은 누가봐도 불합리했다. 실제로 7월 17일 주총장에서 몇몇 소액 주주가 투표 전 발언을 통해 합병 비율을 재조정해서 합병안을 재상정하자고 요구했다.

결국 합병에 반대하면 무조건 합병이 부결된다는 프레임이 짜였다. 합병 부결은 사실 삼성물산 주주들한테도 손해였다. 지난 5월 26일 합병이 발표되고 6월 4일 엘리엇 사태가 시작되면서 삼성물산 주가는 상당히 부양된 상태였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다 합병법인 삼성물산의 성장 기대감이 뒤섞인 주가였다. 합병이 부결되면 이런 재료들이 사라지면서 주가가 떨어질 게 뻔했다. 소액 주주들도 합병을 부결시키긴 어려웠다. 합병 비율은 억울하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이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높여서 합병 비율 탓에 입은 손실을 만회해주길 기대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총수 자본주의의 완성과 한계

총수 자본주의 다음엔 주주 자본주의가 도래한다. 이때 기업은 일개 개인이나 가문이 이끌기엔 조직 규모나 자산 규모가 커진 상태다. 이미 창업주 가문보다 일반 주주들의 지분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더 이상 소수 지분을 가진 개인이 창업주의 후손이란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게 된다. 자연히 오너든 경영진이든 주주 친화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람직한 주주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으로서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 결정적인 분수령이었다. 1990년대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상 삼성은 이재용 체제를 20년 넘게 준비했다. 7월 17일 주총은 그 대미였다. 한국에선 총수 자본주의의 대안이 없다고 믿는 소액 주주들은 결국 익숙한 이재용 3세 체제의 손을 들어주는 선택을 했다. 자신들의 금전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이 유일한 대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합병 발표 이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하락 일로다. 사실상 합병안을 발표했던 5월 26일 즈음 수준으로 돌아갔다. 외국인과 기관들이 계속 순매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경영권 분쟁 같은 이벤트 재료가 소멸되면 일시적인 주가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어쨌든 합병에 찬성했던 주주들도 주가 하락으로 일단 투자 손실을 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어쩔 수 없다. 이제 주주들은 삼성이 약속한 합병 삼성물산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들을 믿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주주 수동주의다.

제헌절 삼성물산 주주총회는 한국 경제사에 기록될 날이다. 이로써 지난 20년 동안 이건희 회장이 이끌었던 한국 경제를 앞으로 20년 동안 이재용 부회장이 이끌게 됐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17일 제헌절은 삼성공화국의 3대 세습이 이뤄진 날이다.

21일 오전 경북 구미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앞 오른쪽)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이 글은 중소기업뉴스 <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에 게재된 글입니다.